▨… 언젠가 몸의 구성원들이 모여 자기들은 뼈 빠지게 일하는데 위는 하는 일없이 게으르게 자빠져 자기들의 노동의 결과를 즐기고 있다고 불평하였다. 마침내 손과 입과 이빨은 위를 굶겨서 굴복시키기로 뜻을 모았다. 그러나 위를 굶길수록 자신들도 점점 허약해져 갔다. 이로써 위도 자기의 역할을 가지고 있는 것이 명백해졌다. 위의 일은 받아들인 음식을 소화시키고 재분배해서 다른 구성원들을 살찌게 하는 것이었다.

▨… 앞의 글은 메네니우스 아그리파(Menenius Agrippa)의 우화이다. 주전 494년 로마는 주변의 여러 종족과 전쟁을 치루었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나가 로마를 지켜낸 것은 평민들이었다. 목숨을 바치는 충성심에도 결코 원로원 의원이나 성직자가 될 수 없음에 절망한 평민들은 전쟁에서 귀환하면서 로마를 향해 창을 돌려 겨누었다. 이들을 무마하기 위한 아그리파의 사자후의 내용이 이 우화이다.

▨… 비슷한 내용의 일갈을 우리는 알고 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고전 12:21).” 사도바울이 아그리파의 우화를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다만 고린도교회의 분열상이 사도바울의 마음을 아프게 했고 그 때문에 교회의 일치를 강조했음은 우리 모두 알고 있다.

▨… 어느 지역에서인가 순서를 맡은 한 목사님이 그곳에 모인 평신도들의 성토의 대상이 되었다는 소문이 들린다. 평신도 전체의 마음을 살펴서 강사나 순서 맡을 사람을 결정할 일이지 왜 평신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을 선정했느냐는 왈가왈부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이미 선정된 강사나 순서맡은 이에 대해 가타부타하는 것은 성결교회 풍토가 아니다. 성결인의 모습이 아니다.

▨… 그러나 자칫하면 로마로 회군하던 평민군대가 로마를 공격하기 위해 창을 돌려대는 것과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는 망발인가? 지나친 염려인가? 걱정도 팔자라면 차라리 다행이겠다. 고린도교회를 향한 사도바울의 염려가 실상은 우리를 향한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낀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희망이 있다. 누구일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고 고백해야할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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