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창순 장로(서울중앙지방∙장충단교회 명예)
‘말’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소리, 즉 언어’라고 되어 있습니다. 말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실 때 모든 동물 중에서 오직 인간, 사람에게만 부여해주신 특권입니다.

여타 동물들은 그들만의 독특한 소리로 어느 정도 의사소통은 가능할지 몰라도 그것이 말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말의 종류가 지구상에 무려 7,105가지나 된다고 하는데 이는 나라 수를 200개로 본다면 40배 가까운 수치가 됩니다. 즉 같은 나라에서도 지역과 종족에 따라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가 의사소통으로 말을 할 때 몇 가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에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람뿐이 아니고 모든 동물은 이목구비 중 귀가 둘, 입은 하나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두 귀가 하는 일은 ‘듣는 것’ 하나뿐인데 양쪽에 같이 있고 입이 하는 일은 먹는 것과 말하는 것 두가지인데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왜일까요? 듣기는 두배, 말은 절반만 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대인관계에서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듣고나서 내 의견의 피력하면 서로간에 성내거나 다툴 일도 없을 것입니다.

서양 속담에 ‘웅변은 은이지만 침묵은 금(Speech is silver, silence is gold)’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말이 많은 것보다 적은 것이 더 좋다는 뜻일 것입니다.

말을 할 때 같은 말이라도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게 다듬어서 단점을 들춰내기 보다는 장점을 찾아서 격려해줘야 하겠습니다. 이 말은 칭찬을 먼저 많이 하고 잘못은 약간만 지적하라는 뜻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는데 고래 뿐이 아니고 칭찬은 사람도 덩실덩실 춤을 추게 한다고 생각됩니다. 단 칭찬이 변질되어 아부나 아첨이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남을 칭찬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만한 칭찬을 받을 자격을 갖춘 것이고, 남의 잘못을 탓하는 사람은 자기도 그런 잘못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말 중에는 존대말과 반말이 있는데 존대말은 연장자에게 쓰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연소자에게도 반말보다는 존대말을 쓰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합니다.

부부간에도 좀 어색할지 몰라도 서로간에 존대말을 쓰면 그만큼 신뢰도가 높아질 수 있고 다툼도 억제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자녀가 성인이 된 후에도 늙은 부모에게 반말을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친근감이라고 하기보다 일종의 불효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 어린 자녀가 말배우기를 시작할 때부터 존대말을 들려주면 성장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존대말이 생활화되리라고 여겨집니다.

다음으로 말 중에는 거짓말이 있는데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이 세상에 아무리 성인군자라고 하더라도 선의에서건 악의에서건 거짓말을 단 한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을 빼고는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혹자가 “나는 거짓말을 모르고 산다”라고 한다면 그 말 자체가 새빨간 거짓말일 수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거짓말의 횟수를 줄이느냐가 중요하겠지요.

말의 씨앗은 생각인데 즉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어떤 말이 나올지 결정됩니다. 다시 말하면 말하기 전에 생각부터 건전해야 좋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번 뱉은 말은 다시 주어담을 수가 없고 나쁜 말은 사과한다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속된 말로 예수쟁이치고 말 못하는 사람 없다고 하는데 달변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교회에 다닌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행동으로 말의 진정성을 보여주는게 중요합니다.

상대방이 “신앙인은 역시 다르다”며 감동을 받으면 스스로 교회의 문턱을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구태여 특별한 전도행위가 필요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말을 잘한다’의 뜻은 무엇일까요? 아무리 청산유수와 같은 말을 할지라도 말하기 전 한번 더 생각하고 좀더 신중하게 잘 다듬어서 할 것이며 한번 말을 했으면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 즉 말 따로 행동 따로가 아니라 언행일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로 글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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