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라의 경문왕은 즉위한 후 귀가 갑자기 당나귀 귀처럼 자랐다. 왕후와 궁인들은 모두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오직 복두장() 한 사람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평생토록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죽을 때가 되자 도림사 대숲 가운데로 들어가 사람이 없는 곳에서 대나무를 향해 외쳤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그 후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에서 이런 소리가 났다. “우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삼국유사, 한글 역·김원중)

▨… 한 편의 짤막한 동화 같은 이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서 비밀은 영원할 수 없음을 늘 깨우쳐 주는 죽비소리의 역할을 감당해왔었다. 그러나 유신시대 어둠의 세월을 살아온 언론들은 ‘죽을 때가 되자’라는 말을 죽음을 각오하고라는 말로 해석하고 이 이야기에서 언론의 사명을 재확인했었다. “복두장이 남긴 그 바람소리는 정론(正論)에의 충성이 시들어갈 때마다 가슴속 깊이 울려 온다”라고. (김중배 시평, “그게 이렇지요”·동아일보)

▨… 어느 추운 겨울 고슴도치 한쌍이 추위를 견디다 못해 서로의 몸을 비볐다.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기자는 지혜였다. 그러나 몸을 가까이할 수가 없었다. 몸의 가시가 서로의 몸을 찔렀기 때문이었다. 인간의 삶에서도 고슴도치적인 운명을 확인한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사랑과 미움의 양가감정에 빠져 있는 인간의 상황을 ‘고슴도치의 딜레마’라고 표현했었다.

▨… 현대인들은 너나없이 다른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깊이 맺지 않으려 한다. 목사의 세계도 다르지 않다면 과언일까. 상대방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간섭할 일도 상처받을 일도 피하려 한다. 자기 방어에 전심전력을 쏟는다. 이기적이라고 할 만큼 자기중심적인 존재가 되어간다. 이른바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갇히고 있는 것이다.

▨… 한국성결신문은 교단 남전도회 회보로 출발하였지만 이제는 어엿한 교단지로 모든 성결인들에게 인정받는 신문이 되었다. 교단지이기에 교단의 정책 방향을 비판하면서 교단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경고를 알려야 한다.(겔 33장) 한국성결신문의 이 역할은 하나님이 주신 명령이므로 단순한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본질적 사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 한국성결신문이 지령 1000호 시대를 연다. 어떤 이들은 언제 한국성결신문이 대나무 숲에서라도 진실을 토로한 복두장의 역할을 고민한 적 있느냐고 힐난한다. 교단지라는 이름이 주는 안전성(?)에 만족한 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잊어버리고 스스로 고슴도치의 딜레마에 갇히기를 자청하는 중 아니냐고 비아냥대기도 한다. 그렇다. 언론의 정도를 얘기하는 신문이기에는 너무 부족했었다. 그 부족함을 부끄러워하기에 한국성결신문은 지령 1000호에서 기독교대한성결교회의 파수꾼이 될 것을 다시 다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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