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훈 목사(청주지방∙서문교회)
지금 우리 사회는 방향을 잃은 채 무섭게 흔들리고 있다. 곳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분노가 활화산 같이 표출되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로 치닫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녹녹치 않은 현실을 사는 청년들은 희망이 없다고 모든 걸 포기하는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에서 최근에는 연애, 결혼, 출산,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 건강, 외모를 포기하는 9포세대)로 추락하고 있다.

전세 값 폭등, 청년 실업률 증가와 영세 사업장이 몰락해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사상 최고조에 이르는 등 사회적 약자들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치열한 분노의 치유자로 서야 할 교회에도 감당할 수 없는 분노의 찬바람이 불고 있다. 일부 목회자의 전횡과 상식 밖의 설교, 신자들 간의 갈등으로 도덕성, 윤리성이 땅에 떨어져 휘청대고 있다.

엄청난 분노 속에 갇힌 블랙홀이 된 현실.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위기의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전문가들은 최근에 발생하는 분노 범죄가 과거보다 더 잔인하고 피해 규모도 크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분노를 유발하는 사건들의 빈번한 발생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불안정하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며 “우리 사회의 분노 조절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분노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 정서의 하나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분노가 부정적 감정으로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자제력을 잃은 분노가 폭발하면 범죄나 폭력, 살인 사건으로 치닫는 것이다. 특히 분노의 대상이 어린이나 여성, 사회적 약자들인 경우가 많다.

분노에 대해 성경은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분노와 인간의 분노만 600여 번이나 언급되고 있다.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히브리어 명사는 ‘아프’란 단어이다.

코 또는 콧구멍을 의미하며 콧숨을 내뿜거나 코를 벌렁거린다는 표현으로 노(怒)를 나타내는데 사용한다. 잠언에 ‘노하기를 더디하다’(잠언 14장 29절)는 구절은 문자적으로 ‘코를 길게 하다’라는 뜻이다.

성경은 분노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분노는 받아들이되 죄가 스며드는 것은 반대한다. ‘화가 나면 조심하라. 죄 짓기 직전이다’는 말이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에베소서 4장 26~27절).

누구나 분노할 수 있다. 분노도 감정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인격장애와 행동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자기 감정에 함몰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고통과 상처를 남기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끊임없이 대인관계의 문제를 일으키고, 항상 뭐든지 자기만 옳다고 믿고 우기지 않는가?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하게 표현하고 분노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만드는 것이다.

분(忿)은 마음(心)을 나누어 놓는다는 의미다. 흩어버리면 분노는 힘을 못쓴다. 일종의 뇌관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운동을 하거나 일기를 쓰고 친한 친구를 찾아 화난 이유를 말하는 것도 좋다.

세상만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 세월이 약이라 하지 않는가. 세상만사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인간사는 다 지나가는 것이다. 별 것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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