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서울중앙지방∙성락교회)
며칠 전 오후에 어느 연합집회에 가서 두 번 설교했다. 목회자도 여럿 왔는데 집회 사이에 식사하고 쉬는 시간에 젊은 목회자 한 사람과 얘기했다.

나에게 목회적인 조언을 구하는 상황이었다. 부교역자로 있을 때는 목표가 명확했단다. 맡은 사역에서 출석하는 성도를 늘리는 것이 분명한 과제였고 또 열심히 그렇게 했다.

그런데 담임목회를 하면서 요즈음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이 맡은 양떼들을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이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만히 얘기를 들으니 참 진지한 사람이고 자기 삶의 자리에 대해서 깊게 성찰하는 목회자였다.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그래, 어디로 가는 것인가…, 적어도 방향은 분명해야 하지 않겠나. 교회가 가야 하는 방향은 어디고, 지금 가고 있는 방향은 어디인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목회자란 존재는 무엇이며 누구를 이끌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늦저녁 서울 도심의 하늘은 낮았고 한강대교를 건너면서 먼저 가려는 차들의 경쟁이 심했다.

돌아오면서 그 젊은 목회자에게 내가 해준 말을 생각했다. 목사로서 제대로 살아가려면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을 잊는 시공간이 있어야 한다.

바른 신학의 입장에서 보면 목사는 신분이 아니고 직무다. 우리는 로마가톨릭과는 다르다. 성직자가 성직자답지 않아도 그 신분 자체가 그냥 유효하다고는 볼 수 없다.

맡은 직무에 진실하고 성실하며 끊임없이 직무의 선한 유용성을 갈고 닦아야 목사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 목사가 아닌 시공간이 있어야 한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 말이다.

유일한 계시며 진리인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주님을 만나는 중심 자리다. 말씀묵상, 예수 믿고 사십 년을 걸었고 목회하며 삼십 년이 넘었는데 이 주제만큼 내 삶에 깊이 짜인 것이 없다.

말씀묵상 시간에는 목사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말씀을 묵상한다.

성경 지식을 깊게 하고 성경의 어느 책을 충분히 구조적으로 파악하여 더 유능한 목사가 되려고 말씀묵상의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묵상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 그분의 뜻을 알고 거기에 순명(殉命)하여 사는 것, 그것뿐이다. 그 기쁨과 가슴 저린 감격이면 끝이다.

다른 목적이 없다. 이런 자리에서 목사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복해진다. 그 힘으로라야 목회의 어려움과 갈등을 견디며 넉넉하게 넘어설 수 있다.

지난 주간에 있었던 이른바 ‘성총회’가 떠올랐다. 1000여 명이 긴 시간 들어앉아 있어서 탁해진 공기와 날카롭고 첨예한 관심사가 뒤섞여 거룩함은 느끼기 힘든 공간이었고 그런 회무였다.

어떤 의제에서는 싸움이 있었고 또 어떤 의제에는 거의 관심들이 없었다. 임원 선거에서 당락이 갈리면서 희비가 교차되었는데, 그 기쁨과 탄식은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출마자들이 섬기는 교회의 성도들까지 이 비정한 선거에 합세하기도 했는데, 당선된 교회의 성도들은 현수막을 펼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고 낙선된 후보 교회의 성도들은 펼쳐보지도 못한 현수막을 싸들고 자리를 떴다.

여느 해의 총회보다 유달리 길어진 회무에 지친 마음들이 가득했고 주일이면 예배드릴 그곳 바닥엔 쓰레기가 널려있었다.

뭐 사람 사는 곳, 사람 사는 일이 다 그렇다.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계시를 받아서 순수지고의 하늘 공동체를 염원하는 것도 아니다.

2000년 교회 역사에 있었던 많은 병리현상을 모르지 않는다. 내 생각이나 시각이 오늘날의 평균치보다 더 날카롭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중요한 질문은 외면하면 안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것인가? 교단은 어디로 가는 것이며, 목사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총회석상에서 어느 대의원이 장로 직이 거룩한 직분이 아니라고 오해될 발언을 했다. 어느 장로 대의원이 이를 문제 삼으면서 공개적으로 사과하라고 흥분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 거룩한 직무를 맡은 장로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권사, 안수집사, 집사, 성가대원, 교사, 부모, 각양 사회적 책무가 다 거룩하다. 이들은 어디로 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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