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3)

이재정 목사(전북지방∙익산삼광교회)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 같답니다.(시 1:3) 성경의 배경이 되는 지역은 물이 귀한 땅이니 시냇가에라야 나무가 자랄 수 있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입니다. 실제로 요단강 발원지나 그 강 주변에 나무가 자라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무의 결실은 두 가지 공급을 통해 이뤄집니다. 먼저는 뿌리를 통해 땅에 녹아 있는 각종 자양분을 빨아들이는 것으로 자라고, 열매를 맺습니다. 어느 토양이나 뚫고 들어가 자양분을 녹여 내는 역동적 뿌리가 필요하지요.

다른 한 편은 잎사귀입니다. 잎사귀는 하늘의 햇볕을 받아들여 열매를 익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과수원 농부는 사과 한 알이 익는데 쉰 석장 이상의 잎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열매가 맺었어도 잎이 없으면 익지 못합니다.

사람을 나무에 견준다면 각각의 열매는 그 나무에 따라 다르겠지요. 종류가 다르더라도 풍성한 열매가 잘 성숙되는 것을 복되다 하겠습니다. 어떤 종류의 열매라 할지라도 여전히 두 가지 조건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먼저는 뿌리를 통해 땅의 것들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땅위의 수고를 통해 돈을 벌고 학문을 이루고, 열심히 선거 운동을 해서 원하는 역할을 맡는 일에 당선되기도 합니다. 이런 일들은 다 뿌리의 수고로 얻는 땅의 열매들이겠지요.

109년차 교단 총회를 마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뿌리의 수고들을 통해 좋은 열매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특별한 수고를 바쳐 선거를 치렀습니다.

땅의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어 당선 되신 분들도 땅의 열매를 맺은 것이겠습니다. 다 복된 일입니다. 남은 것은 그 열매를 잘 익혀서 자신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열매가 잘 익는데는 하늘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시 1:3)라고 선언합니다.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을 행함이 아니라 그 상태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영적 상태가 메마르지 않아서 하늘의 공급을 받도록 준비되어 있으면’ 이라고 읽힙니다. 무엇을 ‘함’이 아니라 무엇이 ‘됨’을 응원하는 말입니다.

이게 남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각각 땅의 수고로 맺어 놓은 열매가 잘 성숙되도록 하늘의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법과 질서’는 땅의 산물입니다.

조직, 제도도 그렇지요. 그걸 잘 지켜보겠다고 다들 다짐합니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실상은 법과 질서가 올무가 되는 경우를 지난 총회를 통해서 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오죽하면 ‘그 총회에 참관인으로 오셨던 바울 사도’께서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고 그러셨을까요.

뭐든지 ‘잘 하려고’ 버둥대다 보니 의견 상충이 극한 대립으로 이어진다고요. 그 전에 ‘제대로 됨’을 위해 하늘의 공급을 받으려 들면 더 깊은 성숙으로 들어 잡된 소리들은 잦아들지 않을까요. 자신을 햇볕아래 마르지 않은 잎사귀로 열어 놓으면 성숙을 위한 하늘의 공급이 임합니다.

각각의 소임을 따라 총회 만들어 내느라고 땀 흘려 뿌리의 수고를 했습니다. 그 중의 옥신각신이야 스스로 한계로 인정할 만큼 성숙은 이루어진 듯 합니다.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놓은 열매들이 잎사귀를 통해 하늘의 공급을 받아 제대로 성숙되어야 합니다. 나무 자체의 유익이 아니라 타자의 유익을 위해 과실을 내 주는 나무가 되어야겠습니다.

각각의 소임을 맡은 여러 직책의 여러 일꾼들이 뭐든지 ‘잘 하려고’ 하지 말고 그 행위 주도자들 스스로 ‘잘 된’ 주체가 되면 가을 사과처럼 성숙의 향기가 발로 될 것입니다.

그게 형통 아닐까요? 우리 성결교회의 형통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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