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목사(한국웨슬리언지도자협의회 사무총장)
나라가 어지럽고 교회가 부패할 때 홀연히 일어난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나라와 교회를 구하기 위해서 자기를 포기한 운동가들이다.

3·1운동의 유관순 열사와 이준 열사, 안중근 의사는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고 묵상만 하는 사변가들이 아니라 행동하는 지도자, 희생하는 지도자들이었다.

이순신 장군이 이 시대에 존경받고 주목받는 이유도 그가 자기를 버려 나라를 구한 행동하는 순국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유럽과 영국 사회에도 설교의 대가 휫필드를 비롯한 유수한 학자와 저술가, 목회자가 많았다. 그러나 자기를 버리고 나라와 교회를 위해서 분연히 일어나 ‘아니요’ 하며 정의와 사랑을 실천한 지도자는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였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를 18세기 종교개혁의 완성자로 위대하게 사용하셨고 전 세계 2억 명이 넘는 팔로워가 본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 전에 최초의 종교개혁자 독일의 마르틴 루터도 그 후 프랑스의 종교개혁자 장 칼뱅도 마찬가지다.

성경만 읽고 묵상하고 철학만 한 것이 아니라 성경을 보고 시대를 보고 세상의 부정과 부패, 교회의 타락을 보고 분연히 일어나서 교회를 정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킨 행동하는 운동가, 실천하는 순교자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을 통해서 오늘의 기독교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행동하는 지도자,  실천하는 지도자, 희생하는 지도자를 찾고 계신다.

오늘의 한국 교회와 세계 교회에는 이론적인 학자와 말 잘하는 지도자가 너무 많다. 그러나 자신을 내려놓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상을 가지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45년 전인 1970년 5월 24일 새벽 2시경 유성성결교회에서 철야기도를 하던 중 성령을 체험하고 1974년 충정로 서울신학대학교에 입학한 뒤 웨슬리신학 강의(조종남 박사)를 듣던 중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던 웨슬리를 본받은 목사가 되려고 결단했다.

필자는 그때부터 세계적인 리더십의 비전을 갖기도 했고 45년 동안 끊임없이 웨슬리정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학자로, 목사로, 부흥사로, 사회사업가로, 저술가로, 조직행정가로 산 그의 삶을 본받으려고 힘써 왔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것은 타락한 영국 교회 교구목사라는 신분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자유롭게 하나님의 명을 받아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려 한 웨슬리의 청교도 정신의 정의와 용기 있는 결단을 한국교회가 외형적인 교회 성장과 성공적인 리더십으로 잘못 해석한 점을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진정한 웨슬리언이 되고자 신학대학원을 마친 후 다시 일반대학원을 통해서 사회과학을 공부한 뒤 지금까지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 교회에서 34년간 목회하며 세 차례 성전을 건축했다.

또 여러 권의 행정학 책과 웨슬리 책을 출판하였고 웨슬리처럼 보육원인 용인 하희의 집을 통해서 복지사업을 지도하고 있으며 2003년 세계웨슬리언 국제학술대회를 시작으로 2007년 한국 웨슬리언교회지도자 협의회를 창립하여 4회의 국제학술대회와 28회의 국내선교대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2015년 5월 24일은 18세기 종교개혁의 완성자 존 웨슬리의 회심 277주년이 되는 때였다. 1738년 5월 24일 오후 8시경 올더스케잇의 성령체험과 성결운동이 오늘의 한국성결교회를 태동시켰고 감리교회, 나사렛교회, 순복음교회까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존경하며 사랑하는 성결교회 지도자 모두가 행동하며 실천하는 성령신학자요, 성결신학자인 존 웨슬리를 따라서 21세기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위대한 인물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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