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 목사(대구지방∙수성교회)
제(薺)나라 경공(景公)이 공자에게 물었습니다. “정치(政,government)란 무엇입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또 제자 자로가 질문합니다. “위나라의 군주가 선생님을 기다려 정사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께서 정치를 하신다면 무엇부터 먼저 하시겠습니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반드시 이름(명분)을 바로 잡겠다.(必也正名乎)”

논어 ‘안연편’과 ‘자로편’에 기록된 공자의 유명한 정명론(正名論)입니다. 공자의 정명론은 맹자와 순자에 의해 조금씩 변조되지만 그럼에도 그 기본적 음조는 한결같았습니다.

불가(佛家)에는 정명(淨名) 개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유마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공자의 ‘正名’이 ‘명분을 바르게 함’을 뜻한다면 불가의 ‘淨名’은 ‘명분을 정결(解脫)하게 함’을 의미합니다. 즉 ‘명분· 개념· 속칭을 벗어버림’ 즉 절대와 신비의 언어입니다.

‘~답다’라는 말은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입니다. 사전적으로는 체언(주인말) 뒤에 붙어 체언이 지니는 성질이나 특성을 가진다는 뜻의 형용사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대단히 ‘철학적인 말’입니다. ‘~답다’라는 말은 동서양 철학사에서 언어와 대상, 명(名)과 실(實)의 관계를 해명하는 핵심어이기 때문입니다.

‘~답다’라는 말에는 도달해야 할 가치 혹은 목표가 함유되어 있습니다. 공자의 정명론이 ‘대학’에서 ‘격물치지(格物致知)’로 해명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이나 참된 지에 이르는 길은 모두 “도달해야 하고 이르러야 하기 때문”인데 격물의 ‘격’자나 치지의 ‘치’자 모두 ‘도달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당연히 정명론에는 규범적 측면만이 아니라 수행적 측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문절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늘아버지의 뜻, 하늘아버지의 이름’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들은 철두철미 ‘하나님을 하나님답게’ 인정해 드리라는 것입니다. 역으로 인간은 인간다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욱이 목사 장로는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도자들입니다. 

지난 2월 지방회를 앞둔 어느 부서 모임에서 회의 전 담소 중에 모 장로님이 자기 경험을 소개하셨습니다. 너무도 조심스럽게.

“작년 항존위원이 되자마자 모 목사님이 KTX편으로 나를 만나러 오겠다더군요. 정중히 사양했는데도 막무가내로 찾아와 꽤 큰 금액이 든 봉투를 주려고 하기에 거절했었거든요. 그랬더니 무척 서운해하며 돌아갔는데 얼마 후 그 금액에 상응하는 선물을 보냈더군요. 그 후 위원회 조직을 위해 전체위원들이 모였는데 소집책이 위원장이 되는 관례와 달리 그 목사님이 위원장에 당선되더군요. 그것도 압도적으로.”

겨우 항존위원회 위원장직을 위해 누군가가 이런 은닉된 수고를 하고 있다면 작금의 우리 총회임원선거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자명합니다.

목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자신을 십자가에 한번 크게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공자의 正名보다 불가의 淨名에 오히려 근사(近似)합니다. 목사의 이름이 결코 치졸해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목사님들이 총회 의회부서의 실행위원이나 항존위원 한 자리 차지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거나 장로님들이 아직도 ‘그 봉투’를 기다리며 김치국을 마시고 있다면 그 속물근성, 그 노예근성을 이제는 내려놓아야 합니다. 젊은 후배들을 위해. 그리고 당신들의 조상들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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