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서울서지방∙큰나무교회)
수년 전 미국의 어느 신학대학원 신·구약 박사 과정에 수학하는 두 목사님과 논쟁을 벌인 적이 있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예수는 단순히 한 인간일 뿐이고, 초기 교회는 예수를 신적인 존재로 믿지 않았으며, AD 325년 니케아 회의에서 정치적인 의도로 예수의 신성이 결정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연이어 이런 질문을 하였다. “목사님, 바울 이전에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다는 증거가 없지 않나요?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를 신적 존재로 고백한 증거가 없어요.”

과연 바울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신성을 믿지 않았는가? 아니다. 그들은 예수의 신성을 확실히 믿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이렇게 고백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6~8)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 1:15~17)

이 말씀은 예수의 부활을 경험한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었다. 학자들에 의하면 이 고백은 예수의 죽음 이후 불과 2년에서 7년 안에 찬양시 형태로 만들어져 초기 교회에서 예배 중에 널리 불렸다고 한다.

자유주의나 보수주의 신학자들 모두는 이 시가 바울의 창작물이 아니라 바울 이전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고백임을 인정한다.

바울은 회심한 후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이 찬양시를 배웠으며, 그것을 그대로 자신의 편지에 인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니케아 종교회의보다 약 290년 이전에 고백된 내용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은 초기 그리스도인의 고백이요 증언인 것이다.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어느 신자가 질문했다. 참으로 황당한 이야기다.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알다시피 예수님이 결혼했다는 말은 역사적 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결혼에 대한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그 근거를 영지주의 문서인 나그 하마디(Nag Hammadi)에서 찾는다.

특히 빌립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에 “예수는 다른 모든 제자들보다 더 자주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과 “예수는 다른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욱 사랑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으며, 아이를 낳았다는 소설이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빌립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는 빨라야 AD 3세기 초에 쓰인 문서이다. 이미 예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약 180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뒤에 나온 문서인 셈이다.

이에 반해 예수의 생애를 매우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4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는 예수의 죽음 이후 30년에서 60년 사이에 모두 기록되었다.

빌립 복음서와 마리아 복음서는 4복음서에 비해 역사적 신뢰성이 매우 떨어진다. 다시 말해 4복음서가 실제 역사 속에 살았던 예수의 생애를 더욱 신뢰성 있게 기록했다고 평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그 하마디 문서로 불리는 영지주의 문서들의 특징은 어떤 사실 자체를 기록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영지주의 사상을 통해서 하나님과 결합하고, 좀 더 영적으로 살고자 하는 영적 경험을 위해 쓰여진 문서이다.

예컨대 예수께서 “막달라 마리아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 되고자 하는 영적 갈망을 문학적이며 영적 친밀감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영지주의 문서는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 문서인 4복음서에서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가 결혼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이 시대에는 끊임없이 예수님에 대한 도전이 쏟아진다. 참으로 영적 분별력이 필요한 시대이다. 예수님을 바로 알고 깊이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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