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모든 가정마다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기원한다. 모든 제도는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가정과 교회만은 하나님이 만드신 제도이기 때문에 신성(神聖)하기 그지없다. 따라서 인간의 고통은 이 신성이 파괴된 가정으로부터 시작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79년 마더 테레사 수녀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후 많은 기자들에게서 받은 첫 질문이 “세계평화를 위해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가?”였다.

그녀는 “그것은 먼데 있지 않고 가까운데 있다. 바로 여러분들의 가정을 돌보는 일이다. 그러니 지금 인터뷰를 중단하고 즉시 가정으로 돌아가 가족들과 함께 지내라”고 하면서 기자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시대를 살고 있는 인류는 유사 이래 최고로 편리하게 살면서도 이상하게 그 어느 때보다 많은 불안과 불만 속에서 불행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 원인은 가정의 신성함과 사랑이 파괴되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문화발전에 공헌한 유태인의 비밀은 교육에 있고, 그 기초는 가정교육이었다. 아버지는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위로 신의 선물인 자녀들을 책임 있게 가르쳐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간과 사회를 만들어가는 것을 사명으로 한 가정종교의 제사장이요, 어머니는 가정교육의 랍비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쉐마(신 6:4~9)교육을 명령 받아 수천 년의 고난 속에서도 정체성을 잃지 않고 우수한 민족으로 형성되어 가는 비결이었다. 이것이 가정 신성의 보존이다.

또 가정에는 사랑의 강물이 흘러야 한다.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무지개’라는 시에서 하늘에 뜬 무지개를 보며 가슴이 뛰는 어린이를 ‘어른의 아버지’라고 절창했다.

즉 자연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어린이의 품성이야 말로 세상 일로 가슴이 메마른 어른들에게 인생의 신비와 우주의 가치를 깨우칠 수 있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나님이 주신 이 귀한 동심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 바른 교육의 핵심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서 이 귀한 동심이 사라지고 있다.

정서나 인격교육은 제쳐두고 오직 점수에만 매달리는 학교의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가 아름다운 동심을 파괴한다.

또한 자녀를 각종 사교육에 보내어 시달리게 하므로 1등이 되게 하려는 어머니들의 극성스런 자기 성취욕이 동심을 사멸시키고 있다. 이는 이기주의의 극대화이지 결코 자녀사랑이라고 볼 수 없다.

우리 자녀들에게 소아병적인 이기주의를 벗어나 민족과 인류를 가슴에 품을 수 있는 예수의 꿈을 안고 자라게 해야 한다.

지금은 디지털 지구촌의 시대로, 구속사적 역사관을 지닌 교회의 인재들이 인류를 향해 봉사할 수 있는 절호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는가.

동시에 자녀들은 부모를 공경해야 한다. 이 시대에 가장 좋은 효도는 육체적 돌봄보다 부모가 외롭지 않도록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다.

요즘 핵가족시대로 따로 산다지만,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반드시 안부 전화를 드리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찾아뵈는 것이 효도다.

나이 많은 부모가 살아계신다는 것은 가정의 큰 복이다. 삶의 경륜에 따른 지혜로운 말씀, 자녀들을 위한 중보기도를 할 수 있는 어르신이 살아계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그러기에 어르신을 받드는 가정은 복되고, 원로들을 공경하는 교회는 아름다우며, 어르신들을 존경하는 사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계속 성장하고 무한히 발전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사실을 확실하게 마음에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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