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래 장로님(충서중앙지방∙예산교회 원로)
어머니, 올해도 어김없이 5월 어버이주일이 다가 왔습니다. 변함없는 어머니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제가 벌써 37년간 시무장로의 직무를 마치고 원로장로로 추대 받았습니다. 그 동안 주님을 위해 목사님과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며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어머니의 눈물과 땀의 헌신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시무장로를 마치고 은퇴하고 나자 더욱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어머니께서는 17세에 형제고개를 넘어 대대로 우상 숭배하는 집으로 시집을 오셨지요. 시집의 가풍에 따라 그때는 전심으로 우상숭배하셨고, 6남매를 낳고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중한 병에 걸리면서 인생이 변화했지요. 세상의 방법대로 굿도 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어머니는 날로 쇠약해져 죽을 날만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어머니를 사랑하셨습니다. 옆에 사시던 교회 집사님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셨지요.

그 후에 몸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기쁨이 넘쳤습니다. 어머니는 매일 교회에서 기도하면서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기쁨에 빠져 계셨습니다. 아버지도 전도해 함께 신앙생활을 하셨죠.

아버지는 당시 개척교회 담임목사님 사택 건축에 협력하시고 교회에 철재 종탑을 헌납하는 등 아낌없이 교회를 섬기셨지요. 앞장서 주님을 기쁘게 하시던 아버지는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소천하셨습니다.

아버지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던 날 주민들과 교우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까운 분 일찍 가셨다고 하시던 주변 분들의 말씀이 자꾸 생각이 납니다.

당시 47세로 과부가 된 어머니의 고난은 그때 다시 시작되었지요. 6남매 자녀를 양육하기 위해 농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신 어머니! 장정들도 힘들어하는 똥지게까지 어깨에 매었던 어머니가 기억납니다.

일가친척들로부터 예수 믿어 집안이 망했다고 손가락질 받으면 눈물을 흘리면서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찬송하시던 어머니를 기억합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가서 아버지가 생전에 헌물하신 종을 붙잡고 새벽 종치시던 어머니! 매일 철야기도 하면서도 자녀들을 위하여 새벽 밥을 짓고 학교에 보내신 어머니!

우리 교회 강단에 의자가 없는 것을 보시고 “내가 헌물하고 싶다” 하시고 강단의 의자가 들어오는 날 기뻐하시던 어머니!

딸들이 생신 선물로 드린 금반지를 이튿날 교회에 헌금하시던 어머니의 헌신을 기억합니다.

팔순이 되던 해에 고관절 뼈가 부러지셨죠. 그 때 이제는 더 살 수 없다 생각을 하시고는 옷가지 등을 불태우고 금식기도 하던 어머니.

그때 히스기야 왕과 같이 기도하셨던 어머니는 생명연장의 응답을 받아 지금까지 생존하시어 94세가 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요양병원에 입원하셔서 식물인간이 되신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장남인 형님이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셔 왔고, 지금도 효를 다하고 계시니 형님 내외분께서는 하늘의 복을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저희 육남매와 일가친척들이 신앙인이 되어 목회자도 많이 배출하고, 국내외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저희들 걱정일랑 마시고, 하나님 나라를 그리워하며 천국 가는 그 날까지 행복하세요. 저희들도 이 다음에 하늘나라에서 아버지 어머니를 뵙겠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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