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원 목사(소망세광교회∙드루대 신약 Ph.D)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에베소서 5장 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에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헬라어로는 단 한 단어 ‘플레루스떼 ’가 번역된 것인데, 이 헬라어 단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성령충만’에 대한 매우 중요한 가르침이 담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중에 세 가지 핵심을 짚어본다.

채워짐
‘플레루스떼 πληροσθε’의 원형인 ‘플레로오 πληρω’는 ‘끝까지 채우다, 가득하게 하다, 완벽하게 하다, 완수하다’의 뜻이다. 아귀까지 채워 더 이상 들어갈 틈이 없는 정도가 되는 상태, 또는 철저히 완수하고 실현된 상태이다. 따라서 ‘플레루스떼’는 사람의 영 또는 전 인격에 성령이 가득 채워지는 상태를 말한다.

이에 대해 혹자는 성령은 삼위 하나님 중 한 분이시므로 사람에게 가득 채워진다는 개념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논박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성령의 받음, 임재뿐만이 아닌 ‘충만’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연속선상에서 ‘부어주심’을 증거하고 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단순히 “성령을 받으라”(요 20:22)고 하셨다. 반면에 오순절 다락방에서도(행 2:4), 며칠 후 제자들이 기도할 때도(행 4:31), 성령의 충만(‘플레로오’)이 이루어졌다.

또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이루어진 사건과 고넬료의 가정에 이루어진 사건은 ‘성령의 부어주심’이었다고 성경은 증거한다(행 2:18; 10:45).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받음을 넘어서서 가득 채워짐에 대해 분명히 믿고, 구하고, 이루며 살아야 한다.

주권
‘플레루스떼’는 수동태이다. 즉, ‘성령 충만해져라’이다. 헬라어에서 이런 수동태를 대하게 될 때 독자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것은 그 능동적 주어를 밝히는 일이다. 즉, 본문에서 “가득 채워져라”는 명령을 받는 것은 성도들이다.

그러면 채우는 이는 누구인가? 논쟁의 여지없이 하나님이시다. 즉 성령충만의 주권은 하나님께만 있다. 하나님이 충만케 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분석의 과정이 당연하고 단순한 듯 보이지만 한글의 언어개념에 익숙해있는 사람들은 이 포인트를 놓치기 쉽다.

그래서 “성령충만 받아라”는 말씀에 대해 반응한다고 하면서 성령충만의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 집중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성령충만’을 이루고 만들어내려고 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성령충만 받아라!”고 선포하면서 그 선포자가 성령을 주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이런 행위들은 본문의 정확한 이해가 선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성령충만을 받게 하시는 분 그 주권을 가진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계속성
‘플레루스떼’는 시제가 현재형이다. 헬라어 현재형은 일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반복되는 행위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령의 충만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인 사건임을 본문은 적시하고 있다. 성령 받는 일, 성령 충만 되는 일은 한 번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고 계속 이루어져야 하는 일이라는 말씀이다.

따라서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신 예수님으로부터(요 3:34) 성도들은 성령으로 또 부어지고, 또 채워지고, 계속 충만해져야 한다.

다가오는 성령강림절은 성령의 충만에 충만을 구하여 성령으로 더 가득 채워지는 절기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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