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범 목사(광주동지방∙첨단교회)
믿음성장의 척도는 이웃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작년 부활절이 있던 그때, 전 국민은 꽃 같은 생명들이 죽어가는 장면을 속절없이 지켜봐야만 했다. 단 한명도 구해내지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아이들을 비롯해 304명이 수장되었다.

아이들의 탈출을 막으며 “가만 있으라”고 헛된 소리만 하던 선장이하 승무원들은 자기들만 살자고 맨 먼저 탈출 했다. 그들 뿐만이 아니었다. 국민을 지켜야할 국가 기관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 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은 계속 벌어졌다.

당시 교회들은, 국민들은 흘러가는 시간을 부여잡으며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위해 밤을 새워 기도했다. 그런데 막상 그곳 바다에서는 어느 국가 기관과 정경 유착된 민간잠수회사가 투입될 수 있도록 우선권을 주는 문제를 두고 실랑이가 벌어졌었다. 유가족뿐만 아니라 지켜보는 국민의 가슴에 큰 상실의 구멍이 몇 개씩이나 생긴 봄이었다.

어느덧 1년이 지난 4월 17일 봄볕이 따사롭던 날 광주동지방 소속 목회자 몇 명과 함께 팽목항에 다녀왔다. 그곳에는 ‘진실을 밝히자’, ‘기억하자’라는 플랜카드가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작년 이맘 때 세월호 침몰에 대해 친구와 나눈 대화가 기억난다. 거기엔 세월호가 아니라 돈이면 무엇이든 용감해질 수 있고 뻔뻔해질 수 있는 사회와 죄를 짓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세상이 침몰한 것 같다는 말을 했었다.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패한 세상에 경종을 울리고 과연 이런 세상이 괜찮은 것인지를 외쳐야 하는 윤리의 문제가 되었고 가치의 문제가 되었다. 그걸 파악한 많은 사람들은 오늘도 ‘진실을 밝히고, 기억하자’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세월호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에겐 윤리와 가치를 넘어 신앙의 척도를 묻는 사건이기도 하다.
믿음의 성숙, 성숙된 신앙은 이웃과 세상을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보다 물질이 더 우선이고, 하나님과 예수보다 그리고 진리와 사람보다 세상이 정해놓은 물질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고 따라가려는 교회가 많다. 힘 있고 권세 있는 사람들을 친구로 끌어들여 자기의 위세와 안위를 그리고 지위와 유명세를 나타내려 하는 목회자와 성도들도 많다.

이 같은 교회와 신앙은 과연 문제가 없는지 언젠가 세월호처럼 그런 사건들이 쌓여 침몰하지는 않을 것 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고, ‘고통받는 사람의 이웃과 친구가 되어주라’는 선한사마리아인의 교훈과 예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진정한 신앙임을 깨달아야 한다.

팽목항 방파제에는 낡고 조그만 십자가 하나가 매여져 있다. 누군가 거기에 노란 리본하나를 달아 놨다.
모진 바닷바람을 견디며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눈물, 유가족들의 절규를 지켜보았을 그 십자가.

그 십자가는 주님이 모든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치유해 주시기를 바라는 기도이며, 주님이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바라는 기도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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