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 목사(본지 편집위원∙장충단교회)
출사표와 출마는 모두 전투에 나가 적을 치겠다는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전투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제갈량은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치기위해 떠나며 왕에게 글을 올립니다.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에게 역적을 치고 나라를 되살리는 일을 맡겨 주옵소서. 신은 받은 은혜에 감격하여 이제 먼 길을 떠나거니와, 떠날 때를 즈음하여 표문을 올리려하니 눈물이 솟아 더 말할 바를 알지 못하겠습니다.” 군대를 출동시켜 적을 치겠다는 뜻을 임금에게 올린 글이 바로 출사표(出師表)입니다.

출마라는 말은 중국의 송나라를 배경으로 조선 후기(18~19C)에 쓴 것으로 보이는 옛 소설 조웅에 선봉장 강백이 명을 받고 번창출마(飜槍出馬)하였다는 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출사표와 출마는 모두 전투에 나가 적을 치겠다는 군사적인 용어입니다. 물론 권력을 잡으려는 세속의 정치판에서 선거를 치른다는 것은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전쟁과 같으니 그런 살벌한 표현을 사용하겠지만,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교회의 지도자들이 이런 전투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명심보감에 인용된 경행록(景行錄)에는 “자기를 굽히는 사람은 중요한 위치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적을 만나게 된다(屈己者 能處重, 好勝者 必遇敵)”라는 말도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전쟁에서 하솔 왕을 중심으로 말과 병거를 갖춘 연합군에 맞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노획한 말의 힘줄을 끊고 병거를 불사름으로(수11:9) 전쟁의 주관자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한다는 이스라엘의 신앙을 분명하게 드러냈습니다.

다윗은 “구원하는데 군마(軍馬)는 헛되다.”라고 고백하였으며(시 33:17) 또 다른 시인도 “여호와는 말(馬)의 힘이 세다하여 기뻐하지 아니하신다.”라고 하였습니다(시 147:10).

이 모든 것이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라고 하신 분부에 따른 것입니다(신 17:16).

스가랴 선지자가 메시아에 대하여 예언하기를“그는 공의로우시며 겸손하시기에 정복자의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오시리라”하였고(슥 9:9), 이 예언은 예수께서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심으로(눅 19:35)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출사표, 출마 등의 적대감을 드러내는 군사용어를 민주적이고 성경적인 언어로 고쳐 쓸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의 한나라 때 지역의 군수가 “현량방정(賢良方程)하고 효렴(孝廉)한” 여러 사람의 인재를 관리로 천거하면 그들 후보 가운데 더 많은 이들이 찬동하여 붙들어주는 사람을 가려 뽑아 세워주는 일을 선거(選擧)라 하였습니다.

고대 로마시대에 성인 남자들이 어깨에 걸쳐 입는 옷을 토가(toga)라 하였는데 원로원 의원이나 의원후보로 관직에 나갈 때 걸치는 흰색의 토가를 가리켜 칸디다투스(candidatus)라 하였습니다.

정직하고 청렴함에서 오는 권위를 상징하는 옷이었기에 영어의 후보 또는 응시자를 뜻하는 말(candidate)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선거에 임하는 후보는 자신의 깨끗한 삶과 능력을 인정해줄 유권자의 선택을 기다릴 뿐 선택을 받지 못해도 일상으로 돌아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창을 휘두르며 말을 달리는 전투에 임하면 사생결단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교단 총회를 앞두고 역사상 가장 많은 후보가 등록하였다고 합니다. 교단의 임원은 조직의 보스나 수익을 창출하는 경영자가 아닙니다.

죽어도, 살아도, 운명을 같이할 공동체의 지도자로 섬기는 사역자입니다. 진영(陣營) 논리와 적대감을 부추기는 전투적 언어를 버려야 합니다. 제발, 출사표를 던지지 마세요. 출마도 하지 말고 깨끗한 옷을 입고 입후보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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