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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연어가 된 정음전 권사 ④
가족의 생계와 자녀양육을 위해 분투하는 삶
[990호] 2015년 04월 08일 (수) 16:49:39 류재하 목사(전 본지 편집위원장) webmaster@kehcnews.co.kr

그녀의 가족은 친정집에 얹혀 살았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그녀는 길거리에서 내복을 팔았다. 당시 그렇게 장사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수익은 별로였으나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여름 겨울가리지 않고 날마다 계속했다.

1953년 봄에 황해도 피란민들이 많이 다니는 인천 송현교회에서 교인들이 최경애 전도사를 찾는다면서 시어머니를 여전도사로 청빙하였다.

그녀는 아이들과 함께 시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인천으로 갔고, 남편은 부산의 신학교 천막기숙사에서 동료들과 함께 자고 먹고 공부했다.

가족의 시급한 생계가 우선 해결되자 그녀는 성도들의 형편을 헤아리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새삼 깨닫고, 날마다 감사 기도와 찬양의 생활을 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4남매를 양육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어려운 삶은 남편 조종남 목사가 1960년에 미국 유학을 떠나 1967년에 서울신학대학의 교수로 금의환향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이때의 삶을 그녀의 차녀 조희숙 권사가 간략하게 쓴 기록을 발췌해 본다.

“그때부터 어머니 정음전 권사는 부산, 인천, 서울에서 할머니를 모시고 공부하시는 아버지의 뒷바라지를 하며 자녀들을 양육해야만 했다.

맨주먹으로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면서 온갖 고난을 이겨내셨다. 끼니를 잇기 어려운 생활을 꾸려가면서도 공부하시는 아버지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숨어서 일하곤 하셨다.

삯바느질, 뜨개질, 보따리장사를 하면서 4명의 자녀뿐 아니라 조카 등 6명을 키워야했다. 이런 생활 속에서도 시어머님인 최경애 전도사님께는 룻과 같은 며느리였고, 서울 장충단교회에서는 주일학교 교사까지 맡아 봉사하셨다.

아버지 조종남 목사님이 1960년 9월에 미국 유학을 떠나시게 된 것은 또 다른 고난의 연속이었다. 당시 한국은 전혀 안정되지 않은 때였고, 전쟁의 상처가 깊이 남아있던 때에 여자의 몸으로 많은 가족을 부양한다는 것이 어찌 쉬웠겠는가. 그러나 어머니는 오직 주님 한 분만 의지하고 억척스럽게 이런 고난을 돌파해 나가셨다.

아버지는 에즈베리신학교에서 신학석사(M,Div) 과정을 마치고, 에모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1962년에 시작하셨다.

유학을 떠난지 5년만인 1965년 3월 5일에 아버지의 초청으로 어머니가 미국으로 처음 가게 되었지만, 가족을 한국에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심리적 고통이 또 따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쟁에 시달리는 피란생활과 자녀양육, 그리고 시어머니 내조의 무거운 짐을 졌던 어머니 정 권사로서는 모처럼의 휴식기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남편의 귀국과 제2의 삶 
조종남 목사는 마침내 1966년에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존 웨슬리를 연구하여 철학박사(Ph. D)를 받았다. 당시 이 학교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받은 학위였다.

그는 웨슬리신학 사상으로 사역자 양성에 유명한 올리벳 나사렛대학교에 청빙 받아 1년 간 교수직을 마친 후 1967년 서울신학대학의 요청으로 교수로 귀국했다.

그로부터 1년 후 1968년 조종남 박사가 서울신학대학의 학장으로 취임함에 따라 그녀의 삶은 오랜 생계의 압박으로부터 벗어나 남편이 교단과 한국교계의 지도자로서 막중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충실한 내조의 삶으로 전환되었다. 제2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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