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 목숨 하나 부지하려 도망치기에 급급했던 제자들이 어떻게 해서 자신의 목을 내려찍는 칼날도, 자신의 온몸을 삼키는 끓는 기름가마솥도 두려워하지 않는 신앙의 사람으로 변할 수 있었는지를 물었던 사람이 있다. 또한 그는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치욕을 당하면서도 무기력하기만 했던 이가 어떻게 제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숭앙을 받게될 수 있었을까 하고 묻기도 했었다. 이 수수께끼에 답해보라는 것이다.

▨… 작가 엔도 슈사꾸(遠藤周作)는 예수의 부활에 고개를 갸웃하는 현대인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처럼 약했던 그들(예수의 제자들)이 예수의 죽음 이후 어떻게 눈을 뜨고 재기했으며, 예수의 진가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는가. 무엇이, 어떤 일이 그들에게 내면적 변화를 일으켜 제자로부터 사도로 변할 수 있게 하였는가. 그 이유에 대해서 성서는 아무 말도 들려주지 않고 있다.”(‘예수의 생애’)

▨… 이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엔도 슈사꾸는 예수의 부활에서 찾고자 했다. 제자들이 부활을 목도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변할 수 있었겠느냐는 것이다. 그에 의하면 부활은 무슨 논리나 기록에 의해 증명되기 보다는 제자들의 변화에서 자증되어 진다는 것이다. 신학자 제임스 스튜어트도 “제자들이 완전 실망과 당황 중에서 새생명 넘치는 환희의 사람으로 돌변된 것은 주님 예수의 부활이 원인”이라고 못 박았었다.(‘예수의 생애와 교훈’)

▨… 예수 부활의 객관적 증거가 필요하다는 이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있을까. 예수의 부활이 현대인들에게서 의심받는 이유는 예수의 오늘의 제자들이라는 우리들이 부활의 목도자다운 변화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면 망발일까. 하기는 비행기에서 부모가 전혀 통제를 하지 않아 마음대로 소란을 피우는 어린애들을 스튜어디스들이 ‘아기 예수’(Baby Jesus)라고 부르는 세상이 되어버렸으니….

▨… 중국 전한 원제 때, 호지로 시집보내진 왕소군의 심정을 훗날 당의 시인이 읊었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이 봄같지 않음은 꽃과 풀이 없는 탓이라지만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교회수가, 불을 밝히는 십자가의 수가 적어서일까. 아닐 것이다. 부활의 산 증거가 되지 못하는 교회가 아무리 많은들 예수의 부활이 증명될 수 있겠는가. 나는 부활의 증명자인지, 이 부활절에 꼭 자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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