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교수(서울신대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
현재 서울에서는 무역센터 부근 지하철 9호선 개통을 앞두고 역명을 둘러싸고 심각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가 역명을 ‘봉은사역’으로 결정한 사실이 알려지자 기독교단체와 일반시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는 봉은사가 오래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봉은사역이 좋다는 입장이다. 반면 기독교계와 일반시민들은 이곳을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코엑스(무역센터)를 방문하기 때문에 ‘코엑스역’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역명을 정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보다도 이용객의 편리성이다. 이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코엑스를 찾는 사람들이다.

코엑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제회의 장소이며, 젊은이들의 문화공간이다. 매일 10만 명 이상이 코엑스를 찾는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지역의 지하철역명은 ‘코엑스’로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는 현재 2호선에 삼성역(무역센터)이라는 명칭이 있기 때문에 명칭이 중복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이유가 합당하지 않다.

필자는 2호선은 삼성역으로, 9호선은 코엑스역으로 명칭을 조정하는 것이 일반시민의 편의를 고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서울시는 봉은사역명을 주장하면서 봉은사가 문화재적인 가치와 긴 역사를 지닌 사찰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현재 문광부의 자료에 따르면 봉은사는 불국사와 같은 문화재가 아니다. 또한 봉은사가 긴 역사를 지닌 것은 사실이지만 일제시대 과연 봉은사가 한국민족의 아픔에 얼마나 동참했는가를 살펴보면 여기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

일제시대 봉은사의 역대주지들은 친일에 앞장섰고, 봉은사는 각종 친일행사의 주최자였다. 특별히 일제 말에는 봉은사 앞에 일본군 전몰장병 추모탑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는 지역 갈등, 이념 갈등, 세대 갈등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에는 현재까지 심각한 종교 간의 갈등은 없었다.

사실 개신교는 오랫 동안 정교분리원칙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국가의 도움이 없이 성장해 왔다. 그러나 불교는 오랫 동안 호국불교라는 이름 아래 국가의 각종 도움을 요청해 왔다.

최근에는 문화재 보호라는 이름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지원금을 받고 있으며 현재도 정부에게 각종 특혜를 요청하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많은 갈등은 불교가 국가의 도움으로 포교를 하려고 한다는데 있다.

종교단체는 정부로부터 특별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도움이 다종교사회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특정지역 지원이 지역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특정종교편향은 종교갈등을 만들어 내게 된다.

대한민국 헌법은 종교의 자유와 함께 정교분리를 명시하고 있다. 정교분리의 핵심은 국가가 특정 종교를 정책적으로재정적으로 편향되게 지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봉은사역명은 이런 헌법의 대의에 어긋나는 것이다.

정교분리 사회에서 종교는 사적인 영역에 속하며, 봉은사는 분명 특정종교의 사찰 이름이다. 공공장소인 지하철 역명에 매일 10만 명 이상이 왕래하는 코엑스라는 이름을 버리고, 특정 종교의 사찰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지하철의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한국과 같은 다종교사회에서 종교관련 정책은 매우 신중해야 할 것이다. 다종교사회에서 특정사찰의 이름을 역명으로 하는 것은 종교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서울시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준수하여 지금이라도 역명을 개정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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