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서울강서지방∙큰나무교회)
“목사님, 제 대학생 아들이 인터넷에서 어떤 영화를 본 후에 ‘예수는 허구적 인물이며, 고대 이집트 신들 중에서 모방한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예수를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죠?” 어느 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변증학을 강의할 때 들은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이야기가 고대 신비종교에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예를 제시한다. 젖먹이는 이시스 여신상은 기독교 성화 속의 젖먹이는 성모상과 놀랍도록 닮아 보인다.

예수가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했듯이 오시리스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되살아난다. 디오니소스도 죽은 후 얼마 되지 않아 무덤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

미트라스의 추종자들은 미트라스도 하늘에 올라가서 하늘에서 종말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다. 미트라스교에서도 기독교의 성찬식과 마찬가지로 빵과 포도주로서 신성한 의식을 행하였다.

바로 이런 유사점을 근거로 대중작가들은 기독교가 고대 신비종교들로부터 신앙의 핵심 교리를 베꼈다고 단정 짓는다.

그러나 지난 번 칼럼에서도 살펴보았듯이, 기독교 이전에 실제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고대 신비종교의 신인(godman) 신화는 존재하지 않았다. 신비종교에는 기독교에서처럼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고 부활하는 성숙한 신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위에 나열된 기독교와 신비종교들 사이의 놀라운 유사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이것은 결국 기독교가 신비종교를 모방한 것이 아니라 도리어 신비종교들이 기독교의 핵심 교리들을 모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기 기독교는 처음부터 배타적이었던 반면에 고대 신비종교들은 처음부터 혼합주의였다. 특히 1세기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은 혼합주의를 매우 싫어하였다. 유대인들은 유일신을 고집하였고 이 같은 성향은 유대적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배타성은 예수의 복음 전파에도 적용되었다. 사도들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구원이 있음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기독교는 처음부터 다른 종교와 교리적으로 타협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둘째, AD 2세기 후반부터 3세기의 신비종교들은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적극적인 모방을 시도하였다고 볼 수 있다. 기독교가 발생하기 이전에 고대 신비종교들은 기독교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만큼 성숙되지 못하였다.

실제로 죽었다가 3일 만에 부활한 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특히 유대 지역에서 그 신비종교들의 실질적인 영향력은 별로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다가 특히 AD 3세기에 들어섰을 때부터신비종교들의 문서나 여러 자료들은 죽었다가 부활한 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AD 1세기 때만 해도 각 신비종교들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갑자기 AD 2세기 후반부터 특히 3세기에 기독교와 유사한 종교 의식들을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독교와 신비종교의 유사점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2세기 후반 또는 3세기 자료들을 그 근거로 내세운다.

분명한 것은 기독교와 신비종교의 유사점들은 AD 1세기나 그 이전에는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점들은 처음부터 배타적이었던 기독교가 베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혼합적이고 모방적이었던 신비종교들이 기독교와 경쟁하면서 기독교를 모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님의 복음은 고대 신화에서 베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고대 인물들 중에서 가장 탁월한 역사적 인물이다.

 젊은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역사적 진실을 왜곡하는 적조현상을 바로 잡기 위해 교회의 각성과 보다 적극적인 기독교변증이 절실히 요구된다.

“잘못된 사상은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장애가 된다”는 그레샴 메이첸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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