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덕만 교수(복음신학대학원대학)
예수의 말씀을 듣고 육체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주변에 모였습니다. 집회가 끝났을 때, 산속의 날은 저물고, 군중은 지치고 배고팠습니다.

예수가 그들의 저녁문제까지 책임질 필요는 없었습니다. 곁에 있던 제자들도 같은 생각이었겠지요. 하지만 예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허기진 군중을 보며 그들을 먹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 6:5).

이 질문은 이 상황에서 예수의 속마음을 보여줍니다. 이때 제자들을 대표해서 빌립이 답했습니다.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요 6:7).

그의 대답은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이었습니다. 자신들이 이 문제와 상관없고 해결할 수도 없다는 분명한 선언이었습니다.

이때 한 아이가 나타났습니다. 그 아이는 현실적 계산에 근거해서 문제해결의 불가능을 선언하고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았습니다. 대신 자신이 갖고 있던 오병이어를 예수께 드렸습니다.

비록 이 작은 도시락으로 수 천 명의 허기를 해결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군중의 아픔을 외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것이 작고 빈약했지만 어떻게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자신의 작은 것이라도 내놓은 것입니다.

군중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그 아이는 예수를 닮았습니다. 동시에 200데나리온이라는 현실적 계산 뒤에 자신을 감추지 않았다는 면에서 제자들과 근본적으로 달랐습니다.

결국, 그날 5000명의 사람들이 풍족하게 저녁식사를 마쳤습니다. 그 기적은 200데나리온이 아니라 아이가 드린 오병이어로 가능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대하신 것은 “5000명을 먹이기 위해선 200데나리온이 필요하다”는 제자들의 지극히 현실적 판단과 합리적인 계산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현실적 진단을 핑계로 문제와 자신을 논리적으로 분리하려는 영악한(?) 태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이웃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신의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는 소박한 마음과 결단이었습니다. 결국 제자들이 실패했던 문제를 아이가 풀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문제해결의 열쇠는 200데나리온이나 오병이어가 아니었습니다. 그날 저녁에 산중에서 굶주린 5000명을 배불리 먹인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기적을 홀로 그리고 무에서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의 백성들과 함께 그리고 오병이어를 통해 행하셨습니다. 

200데나리온이든 오병이어든 재물만으론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200데나리온이나 오병이어가 예수와 같은 마음으로 나눌 땐 상황이 달라집니다.

문제는 200데나리온이나 오병이어가 아닙니다. 배고픈 이웃에 대한 깊은 연민 속에 자신의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마음으로 나눈 물질을 축복하셔서 이 땅의 불가능한 문제를 해결하시고 이 땅에 당신의 나라를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방법입니다.

김두식 교수의 책 중에 ‘세상 속의 교회, 교회 속의 세상’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세상 속에 교회가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교회 속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도 교회가 세상 속에 존재하는 대신 교회 속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굶주린 5000명의 백성들 앞에서 200데나리온을 계산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200데나리온의 계산 대신 오병이어를 직접 나눕니다.

비록 현실적 계산의 눈으론 터무니없는 양이요 무모한 행동이지만 고통 받는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나누는 작지만 진정한 선물은 기적의 원천이 됩니다.

이런 사랑과 헌신이 주님의 뜻과 일치할 때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신자가 되고 교회가 성장하는 것은 이처럼 200데나리온적 사고방식에서 오병이어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그런 변화가 진정한 회심이고, 그런 사람들의 공동체가 교회이며, 그렇게 변한 세상이 하나님나라입니다.

지금 우리는 사순절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수의 마지막 40일을 묵상하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거룩한 여정입니다.

200데나리온의 똑똑한 계산 대신 오병이어의 소박한 나눔을 축복하셨던 예수께 주목하면서 온전한 헌신, 참다운 제자, 그리고 진정한 교회에 대해 묵상하는 거룩한 여정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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