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봉사상 수상과 YWCA 운동 30년

1984년 9월 18일, 오전 10시, 유관순 기념관에서 과학적인 봉사 실적 검토와 엄격한 심의를 거쳐 뽑는, 한국 여성으로서 최고의 명예인 용신(容信)봉사상의 수상자로 정중흥 권사가 선정되었다.

그는 우리 성결교단을 빛내며 용신봉사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부상은 컬러 TV와 상금 100만 원이었는데, 상패 외의 TV와 상금은 다른 곳에 헌납하였다.

이때 상을 받으면서 그녀는 “이런 상을 받다니 황송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용신봉사상은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소설 ‘상록수’의 실제 모델인 최용신을 기려 사회봉사에 공이 큰 여성에게 매년 전국 여성대회(이화여고 내 류관순기념관)에서 시상해 온 상이다.

그는 삼성애육원 외에도 중학교 시절부터 YWCA에 가입하여 30여 년 동안 사회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었다. 일제의 강점기시대에는 여성 계몽운동과 야학을 했으며, 해방 후에는 시골로 다니며 가정에서의 여성의 역할과 그 위치와 중요성, 어린이 양육법과 식생활 개선 방법 등의 강연과 실습으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녀의 후반기에는 사회가 제법 잘 살게 되자, 큰 문제가 된 소비자보호운동을 통하여 사회의 부조리를 추방하고, 서로 신뢰하는 사회를 만들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군산YWCA 회장으로 10여 년 동안 봉사하면서 김용은 담임목사의 권면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수인들을 위하여 한 달에 한 번씩 생일잔치를 열어 주어 사회의 따뜻한 정을 안겨주었다. 그는 각 교회, 여전도회의 도움을 받아서 이 보람 있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전하는 가운데 ‘삼성애육원’과 ‘중동교회’와 ‘군산YWCA’를 섬기며 평생토록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고 바치는 인생 여정을 조금의 후회 없이 보냈다.

삼성애육원의 원훈은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자’, 둘째는 ‘예절과 질서를 잘 지키자’, 셋째는 ‘정직한 사람이 되자’였다.

그는 고아들을 돌보며, 또 자신의 자녀들을 키우면서 고아들 이상으로 자녀를 챙길 수 없는 형편이었다. 자녀를 사랑하는 어머니의 모성애는 그것을 늘 미안하게 생각했다.

어머니를 바라보는 아이들은 아들 여섯과 딸 둘만이 아니었다. 수십 명, 수백 명의 부모를 잃어버린 고아들도 똑같이 그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자신들의 친어머니의 모습과 사랑을 정중흥 권사에게서 찾는 고아들의 애절한 눈빛을 만나면서 그 아이들이 바라는 어머니가 되려고 애를 썼다. 자신이 낳은 자녀들은 공적으로 뒷전이 되곤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의 진심을 다 아시고 그의 자녀들을 복 있게 키워 주셨다. 어렸을 때부터 고아들과 친구가 되어 원장의 자녀라는 특권의식을 버리게 한 것이다.

정중흥 권사는 고아들의 어머니로서, 친자식처럼 고아들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았다. 그러다가 1996년 그녀의 나이 84세가 된 2월 10일, 오후 3시 30분경에 자녀들과 많은 원생들의 찬송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그녀의 일생은 참으로 남을 위해 헌신한 복된 삶이었고, 동시에 복된 죽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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