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달 28일 개통되는 서울 지하철 9호선 929 정거장 명칭이 ‘봉은사(奉恩寺)역’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종교편향 시비가 일고 있다. 서울시가 지하철 역명 제정 기준까지 무시하면서 무리하게 역명을 정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불교계의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사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봉은사역명이 내정된 곳은 서울의 대표적인 국제회의시설인 코엑스로 바로 연결된다. 하루 10만여 명이 찾고, 국제회의만 연간 수백 건이 열려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강남구가 야심 차게 추구하고 있는 ‘글로벌 강남’의 랜드마크가 바로 코엑스이다.

봉은사는 지하철 역에서 120m쯤 떨어져 있다. 봉은사가 강남에 있는 도심사찰이라고 할지라도 지명도나 역사적, 문화적 측면에서 이 일대를 대표할 만한 곳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불리며 해당 지역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 실정에 부합하는 곳이라는 역명 제정 기준과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봉은사는 과거 ‘일본군 전몰장병 충령탑’을 설치하고 중일전쟁 승리를 기원하는 법회를 여는 등 일제 식민통치를 정당화한 대표적 친일 사찰이었다. 서울시가 봉은사를 역명으로 확정·고시하면서 ‘역사성 있는 봉은사가 적정하다’고 해명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누가 봐도 봉은사역보다는 코엑스역이 되어야 한다. 봉은사는 ‘특정 단체의 홍보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는 명칭이니 향후 분쟁 또는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배제하라’는 기준에도 저촉된다.

코엑스 측이나 다른 종교의 반발을 야기할 게 뻔한데도 봉은사역을 강행한 것은 보편적인 역명 제정 원칙에 벗어나 불교계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더욱이 코엑스 측이 ‘코엑스역’ 명칭을 병기라도 해줄 것을 요청했음에도 서울시지명위원회가 안건조차 상정하지 않았다.

역명이 확정된 후에 변경된 사례가 있는데도 ‘역명 병기는 원칙적으로 불허한다’며 이의제기마저 거부한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처사다.

다중이 이용하는 역명을 사찰명으로 계속 고집하는 것은 종교편향을 자초하는 것이요, 종교간 갈등을 일으키겠다는 의도성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봉은사역으로 제정한 경위에도 특정 종교와 행정적으로 유착됐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봉은사역으로 확정되기 10개월 전인 지난해 2월에 봉은사 주지 원학승려가 박원순 시장을 만나서 봉은사역명을 건의했다는 것이다.

주지 원학 승려는 봉은사 취임 후 도심포교를 위해 봉은사역명 제정에 주력해왔고, 역명 제정 설문이나 서명운동에 신도들을 동원한 인물로 알려졌다.

더욱이 그는 서울시장 면담 후 역명 제정 논의조차 시작이 안되었던 때에 이미 ‘봉은사역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박 시장은 코엑스 측이 역명 병기 이의 신청을 했던 지난해 5월 봉은사에서 열린 주지의 출판기념회를 방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역명 제정 시기에 봉은사 주지와 서울시장이 두차례나 만났다는 것은 부적절한 처신이다.

서울시장은 봉은사 미래위원장 출신이고, 신도회 지도위원으로 활동한 친불교성향의 인사라서 불교와 박 시장의 유착, 종교편향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런 까닭에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강남구교구협의회 등 한국교회가 모처럼 한목소리로 종교편향을 지적하며 역명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구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살피고 전체 교통 이용자의 편의와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된다.

서울시는 지금이라도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종교 간의 갈등을 유발하는 봉은사역명 제정을 철회하고 보다 보편성을 지닌 역명을 새로 정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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