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19:14

성결신문사로부터 ‘주간말씀묵상’에 들어갈 원고를 청탁받았습니다. 목사들에게 원고 청탁은 상당히 부담스럽습니다. 말하는 데만 익숙한 목사들로서는 글로 말씀을 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각종 매체를 통해 많은 설교가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되었습니다.

실제로 ‘주간 묵상’은 본문과 제목이 들어가기는 하지만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설교라고 하자니 분량이 너무 작아서 고민스러웠습니다. 결국 성결신문을 뒤적거렸습니다. 다른 분들이 ‘주간 묵상’을 어떻게 썼나를 살펴보는 제 모습이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제목 그대로 주간 묵상이라는 코너는 성결신문이 발행될 때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자는 것인데 저는 성결신문을 읽을 때마다 한 번도 이 코너의 성경 구절을 찾아 본적도 없고, 또 자세히 읽지도 않던 것이 생각이 난 것입니다. 그리고 저의 이 원고도 어쩌면 읽혀지지 않는 원고가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난 설교를 요약하려고 모아둔 설교 원고를 뒤적거리다가 한 후배 목사의 말이 문뜩 떠올랐습니다. “목사님. 요즘 교역자들과 성도들은 설교에 치이는 것 같아요. 주일이면 새벽 기도회 설교, 주일 낮 설교, 주일 오후 설교 등을 준비하면서 교역자들은 자신의 설교를 미처 실천할 틈도 없이 다음 설교를 전해야 하고, 성도들은 은혜 받은 말씀대로 살아 보기도 전에 다음 설교를 들어 마음에 새겨야 하니 이렇게 설교에 치여 사는 것 아닙니까? 언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참 옳은 말이었습니다.

목사로서 가장 힘들고 두려운 것은 성도들에게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깊이 묵상한 말씀을 준비하는 것이고, 그것을 담대하게 설교한 것인데 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전한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도들 역시 전해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묵상되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하고 실천하며 살아야 비로소 마음의 묵상이 주님께 열납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먼저 주일 낮 예배 시간에 담임 교역자에게 들은 말씀을 묵상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는 순간 설교를 잊어버리고 마는 말씀이라면 설교를 들으면서 동시에 스스로 묵상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다음 새벽 기도 시간의 말씀을 들을 때까지, 혹은 수요일, 혹은 다음 주 설교를 들을 때까지 묵상해야 할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읽거나 들은 하나님의 말씀들이 실천되지 못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은 결국 마음으로 묵상되지 않은 말씀이란 뜻이고 그런 말씀과 묵상은 주님 앞에 열납되지 않는 것들임에 분명합니다.

지난 주간 구역 지도자들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분이 몇 해 전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중심으로 주보에 만들어준 구역 모임 지침서가 참 좋았다며 그 이유를 지금 구역 교재가 평신도들이 가르치기에는 내용이 너무 어렵고, 또 전하는 분들이나 듣는 분들에게 전혀 감동이 되지 않는 또 하나의 설교가 되고 만다는 것이었습니다.

구역 모임을 통하여 지난 주일 담임 목사님의 설교를 떠올리고 얼마나 적용하고 실천했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구역 모임이 좋겠다는 건의였습니다.
지금 저는 지난 주일 제가 한 설교를 다시 떠올리면서 어쩌면 오늘도 읽혀지지 않을지도 모르는 ‘주간 묵상’코너에 제 얼굴과 원고를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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