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준경 전도사 만남과 신앙입문

일본 순사의 질문에 이판일은 “큰 오해올시다. 오늘 형사나리께서 오신다기에 회합이 끝난 후 약주나 한잔 대접하려는 생각으로 주점에 들러 안주 준비를 부탁하고 우선 술맛을 본다는 것이 그만…”이라고 얼버무렸다.

이어 할머니를 바라보고 눈을 찡긋하며 응원을 청한다. “할머니, 가만 계시지 말고 그렇다 안 그렇다 말씀 좀 하세요.” 할머니 또한 다급한 상황을 직감한 터라 “예, 이 장사 말씀이 옳습니다. 형사님 대접한다면서 안주와 술을 특별 주문하셨어요.”

이판일은 형사들의 노기가 서서히 가시는 것을 보며 그 틈새를 놓치지 않고 “모시러 가려던 참인데 일부러 오셨으니 참 잘되었습니다. 출출하실 텐데 어서 앉으세요. 아. 할머니 얼른 모시지 않고 뭘 하세요.”

형사들은 못 이기는 체하고 이판일과 동석했다. 술이 몇 순배 돌면서 격의 없이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더니 이판일이 황당한 내기 하나를 제안한다. 형사 셋과 자기가 3대 1로 주량을 겨루자는 것이었다. 이미 술기운이 든 형사들은 객기가 동하여 맞장구를 치며 한 술 더 떠서 지는 쪽이 그날의 술값 모두와 쌀 다섯 가마 값을 부담하자는 것이었다.

이판일은 무슨 조건이든 다 좋다며 주량겨루기에 들어갔고 오랜 시간이 지나 형사들은 모두 술에 골아 떨어졌다. 끝까지 버티고 있던 이판일은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남아 있는 술을 형사들의 얼굴에 쏟아버린 다음 자리를 떴다. 당시 의식 있는 백성들은 침략자 일본에 대한 분노와 복수심으로 속이 끓어오르고 있었고 이판일 또한 일본 형사들과 기 싸움에서 통쾌하게 승리한 것이었다.

이판일이 어느 날 마을 아이들과 아낙네 30여명이 어우러져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 가운데에는 환한 얼굴의 중년부인이 서서 고운 음성으로 힘차고 구성진 노래를 한 후 전도설교를 하여 모인 무리들이 예수 믿도록 감동시키는 광경이 인상에 깊게 새겨졌다. 그 중년부인은 경성성서학원 신학생 문준경 전도사였다. 그는 경성신학교에 입학하여 첫 실습기간에 복음의 불모지 임자도에 당도하여 노방전도를 시작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1930년 어느 날 오후 이판일이 글을 읽고 있는데 문 전도사가 방문했다. 이판일은 전도사의 정중한 인사를 받으며 친절히 맞이했다. “어떻게 누추한 저의 집을 방문하셨습니까?” “초면임에도 친절히 맞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아주 중요한 책 한권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는 쪽 복음서를 내민다. “이건 무슨 책인가요?" 이판일은 책을 좋아하는 지라 신기한 듯 받는다. “영생을 얻는 진리를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입니다.”

진리에 대한 탐구심이 강한 이판일은 전도사와 진솔한 대화를 통하여 생명의 복음을 접하여 많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얼마 후에 문 전도사에게 묻는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한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동의하시겠습니까?" 이판일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다고 고백했다.

문 전도사는 신앙생활의 필수지침을 알려줬다. 이판일은 즉석에서 주초를 끊어버리기로 결단하고 담뱃대를 부러뜨려 봉초와 함께 아궁이에 던져버렸다. 또한 대대로 내려오던 조상제사를 철폐하여 제사의 기물도 모두 아궁이에 던져 넣고 태워버렸다. 그 주일에 이판일과 그의 아우 이판성의 온가족이 예배에 참례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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