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수 교수(서울신학대학교 교회사)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우리는 광복을 일제의 강압 정치에서 우리 민족이 독립을 얻은 날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은 여기에서 머물 수 없다. 광복은 단지 정치적인 광복일 뿐만 아니라 신앙의 자유를 가져온 것이다.

광복 이전 한국 기독교는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었다.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시작하면서 기독교는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기독교는 반일 친미 세력이라고 해서 많은 시련을 겪었다. 특히 미국 유학을 다녀온 목사들은 미국 스파이로 오해받았다.

신의주에서 목회하던 한경직 목사도, 성결 운동의 기수였던 정남수 목사도 친미 세력이라고 박해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것은 신사참배 강요였다. 일본은 전쟁을 치르기 위해서는 한국인을 동원해야 했고, 내선일체를 빙자해서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한국 사회는 거의 모두가 이런 일제의 강요에 순종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여기에 강력하게 항거한 사람들이 있었다. 길선주 목사는 순교했고, 손양원 목사는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

한국성결교회는 재림 문제로 일본과 마찰을 빚었다. 성결교회는 그리스도가 재림하면 일본 왕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일본이 강조하는 국체명징(國體明徵)에 어긋난다는 것 때문이다. 성결교회는 우주의 주인은 일왕이 아니라 예수님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강제로 교단이 폐쇄되었다.

일본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독교를 박해했다. 내선일체를 명분으로 한국 기독교를 일본 기독교 아래 종속시켰다. 전쟁물자 절약을 이유로 많은 교회를 폐쇄시키고, 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게 했다.

불온사상을 전파한다고 해서 성경 가운데 출애굽기를 읽지 못하고 하고, 찬송가 가운데 재림에 관한 것을 삭제하여 버렸다. 주일에는 먼저 신사참배를 하고 예배를 드리게 했으며 예배순서 앞에 황국선서를 하도록 했다.

이런 가운데서도 한국 기독교인들은 일본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최근에 발굴된 취조문서에 따르면 성결교회는 그리스도가 재림하게 되면 지상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이 나라는 일본제국과는 대립되는 나라라고 가르쳤다. 일본 경찰은 성결교회가 주장하는 천년왕국을 매우 위험하게 생각했다.

또 일부 기독교인 가운데서는 얼마가지 않으면 일본은 망하고 미국이 이긴다는 소문을 퍼트리고 있었다. 충청도 지역의 한 성결교회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싸움은 쥐와 고양이의 싸움이며, 미국이 이기면 기독교인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일제에 잡혀가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은 미국이 일본을 이겨 광복을 맞기를 기다렸다.

전세가 일본에 불리해지면서 일본은 한반도에 미군이 진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때 한반도 내부에서 기독교인이 반란을 일으키면 일본은 매우 어려운 상황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미군이 진주하기 전에 모든 기독교인의  체포를 계획했다. 하지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일본에 떨어진 원자폭탄 때문에 일본은 항복하고 말았다.

1945년 8월 15일은 일제의 정치적인 압제만이 아니라 종교적인 탄압에서 광복을 맞은 날이다. 광복을 맞던 날 전국에서 일제의 종교적인 탄압의 상징인 신사가 불태워졌다.

맥아더 장군의 포고문 1호는 아시아 지역의 사람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되어 있다. 광복은 우리에게 신앙의 자유를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 자유는 한반도의 남쪽에만 해당된다는 점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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