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들의 집, 삼성애육원 설립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갖은 고생을 하고 자란 정중흥은 마음속 깊은 곳에 가슴앓이가 있었다.

길을 가다가 밥 얻어먹는 거지를 만나면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거지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등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바가지를 들고 구걸하는 어린아이를 볼 때면 마치 어린 시절 자신을 보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났다.

왜 이러는 것일까?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편하게만 사는데, 왜 자신은 거지를 보면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박혀 지워지지 않고 눈을 감으면 더 어른거리는 것일까? 이런 번민으로 힘들어 하던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을 읽었다. 눈에 들어온 성경은 시편 68편 5절이었다.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라”는 말씀이 가슴을 뒤흔들었다.

이 말씀이 부딪쳐 오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어린 시절 몹시도 가난하게 살고 밥 굶기를 자주했던 그는 고아들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성경을 찾아 보니 시편 146편 9절에서 “하나님은 고아들을 붙들어 주신다”고 했다. 야고보서 1장 27절을 보니 “고아를 그 환란 중에 하나님 앞에서 돌아보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 고아에 대한 소명을 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그는 고아들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으로 알고 고아들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알았으며 고아들의 외로움을 자신의 외로움으로 알고, 고아들의 눈물을 자신의 눈물로 알게 되었다.

삼성애육원은 “거룩하신 성부 성자 성령의 뜻을 따라 주께서 맡긴 고아들을 사랑으로 양육한다” 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삼성애육원의 시작은 1950년 6·25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발하여 군산으로 난민들이 몰려 들어오자 군산 거리에는 갈 곳이 없어서 배회하는 전쟁고아가 많아졌다.

정중흥 집사는 그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자신이 버리면 그들은 영영 버림받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들을 품기로 했다. 일생을 함께 살기로 했다.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기로 했다. 정 집사는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도 정 집사의 참된 사명을 알고 적극 동의했다.

마침내 두 내외는 살던 집을 팔고 큰 집을 샀다. 그녀는 처음으로 전쟁통에 부모를 잃어버린 전쟁고아 4명을 데리고 와 함께 살았다.

고아들을 식구처럼 여기고 지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고아들이 점점 늘어나 큰 집도 좁아 서로 다툼이 생겼다.

오랜 고민 끝에 그녀는 또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기도 때마다 울부짖고 기도했다. 그런데 뜻밖에 담임목사님을 통해서 응답이 왔다.

정 집사의 간절히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김용은 목사는 마음에 감동이 왔다. 그래서 같은 제목으로 기도를 했다. 그때 김 목사의 환상 중에 어떤 허름한 집이 보였다. 그 집을 찾아가는 길도 환하게 나타나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김 목사는 정 집사가 기도를 마치기 기다렸다가 “좋은 집이 하나 있으니 아침을 먹고 교회에서 만나 찾아가 보자”고 했다. 그래서 찾아 보니 건축용지 170평에 건축면적 60평이나 되는 헌 절간이었다.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절간을 그녀는 복덕방을 통해 싼값에 사서 수리했다. 그리고 길에 나가 닥치는 대로 고아들을 수용했다. 고아는 모두 178명이나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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