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페라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의 문외한이라고 하더라도 대부분 푸치니(Giacomo Puccini)를 떠올릴 것이다. 그의 작품들이 그만큼 많이 공연되었기 때문이다. 그 푸치니가 생애 종반에 암에 걸렸다. 푸치니는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된 ‘투란도’의 작곡을 막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재능을 아끼는 사람들, 친구들은 그가 작곡에 매달리는 것을 만류하며 건강 회복에 전념할 것을 권유하였다.

▨… 어쩌면 이 작품을 완성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예감하면서 푸치니는 투란도 완성을 위해 전력을 쏟았다. “내가 완성하지 않으면 누가 하겠는가”라고 되뇌며…. 1924년 푸치니는 투란도를 완성하지 못한 채 숨을 거두었다. 그의 제자들이 남은 부분을 완성시켜 로마의 스카라 극장에서 초연을 가졌다. 그 첫 공연의 지휘자는 푸치니의 수제자인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였다.

▨… 그 작품 어느 부분에서 토스카니니는 지휘를 중지하고 청중을 향해 말했다. “우리 스승 푸치니의 작곡은 여기까지입니다. 지금부터는 우리 제자들이 완성한 것입니다.” 공연이 끝나자 청중은 크게 감동하여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내주었다. 청중은 누구 한 사람도 오페라 투란도의 완성도를 흠잡지 않았다. 많은 세월이 흘러 전 세계에서 투란도가 공연되지만 투란도는 언제나 푸치니의 작품이었다.

▨… 총회장이 바뀔 때마다 총회장이 추진하는 중점사업의 이름이 바뀐다. 그 알맹이는 분명히 ‘성령운동’이고 추구하는 열매는 하나님 나라 확장인데 그 방법이 바뀌고 그 운동의 주체도 바뀌는 모양새여서, 총회장의 역점사업을 따르려는 교회들도 그 장단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가 목회자 복음콘퍼런스의 참여도를 낮추게끔 했다면 책임은 뉘게 있는 것일까.

▨… 2·3·4운동이 복음112운동으로 바뀌었듯이 교단 중진들의 면면도 바뀌었다. 심지어는 같은 사건에 대한 재판위의 판결도 바뀌었다. 우리의 새해는 해 아래 새 것이 없다는 진리까지도 변하게 하는 것일까. 해마다 총회장이 바뀌고 그때마다 총회의 정책도 바뀌어야 한다면 그 급변을 뉘라서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예수께서 남기신 유언을 감당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라면 푸치니의 제자들이 한마음으로 투란도를 완성했듯이 그 사명을 제자된 이들이 한마음으로 감당해야 푸치니의 제자만큼도 못 감당하면서 무슨 주님의 제자인가? 물어서는 안 되는 질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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