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우 목사(서울서지방∙로고스교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사가 땅콩보다 작아 보인다. 서비스를 문제 삼은 부사장의 회항 명령이면 비행기를 되돌릴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지금은 그녀의 권력이 부메랑이 되어 그녀를 겨누고 있다. 인격에는 인격이 있어서 무시하면 엄청난 반격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칙이다.

새뮤얼 스마일즈는 ‘인격론'에서 천재성은 항상 감탄의 대상이 되지만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인격이라고 했다.

인격은 ‘양심의 힘’에서 비롯된 것이라 했다. 인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변함없는 의무감’이라 했다. 감정이 흔들려도, 사랑이 식어도 변함없는 의무감으로 타자와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인격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언약적 사랑의 완성’이었다. 언약적 사랑은 사랑의 감정이 메말라가는 상황 속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노아와의 무지개 언약, 아브라함과의 쪼갠 고기 언약, 모세와의 시내산 언약 등이 그것이다. 인간은 하나님을 배반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구원해 주시겠다는 언약을 한 번도 어기신 적이 없었다.

누구든지 실수 할 수 있다. 여론은 많은 것을 가진 자의 실수에 인색할 수밖에 없다. 그런 여론을 원망한다면 그 자리에 앉을 자격도 없다.

초기 공격이 어느 정도 끝나갈 때면 ‘너무 몰아 붙였나?’ 싶어서 동정심의 불을 지피는 것이 여론이요 우리 같은 약자들의 양심이다.

그것을 덮으려는 생각과 하수들의 전략이 한심할 뿐이다. 마지막 남은 동정심과 인내마저 바닥이 드러나 십자가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묵상하는 대림절 기간에 ‘땅콩비행기’를 보고 손가락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분을 묵상하려 한다.

말구유에 오셨다. 종들이 사는 문간방 한 칸도 허락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과 본체이셨으나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셨다. 오히려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려 하셨다.

이 땅에서 바르게 살다가 예수께 가려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생각났다. 그것은 우리의 일생은 ‘위탁받은 것’이란 사실이다.

어린자녀에게도 인격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았기 때문이다. 사람만이 아니라 공동체도 소유도 모두 위탁 받은 것이다. 위탁받은 자는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예수를 닮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봤다. 목소리에는 카리스마를 싣지 않고 이야기 하듯이 말하는 것이다.

낮은 자나 높은 자나 동일한 태도로 대하는 것이다. 누구를 대하든지 밝고 맑은 성격으로 주께 하듯 하는 것이다.

무례한 자의 요구를 거절 할 수 있는 용기이다. ‘성공의 보상’은 구성원에게 넘기고 ‘실패의 책임’은 자신이 지는 것이다.

극한 분노 속에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 것이다.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존 맥스웰은 리더의 수준이 공동체의 수준이라 했다.

인격은 하루아침에 생성되지 않는다. 그 중요성을 알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며 하루하루 그분과 동행하는 과정에서 자라는 것이다.

능력이 인격이 될 수는 없지만 인격은 능력이다. 일 중심에서 인격 중심으로 너무 전환되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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