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영 목사(서울남지방∙서부교회)
지난 성탄절 즈음에 양평으로 운전해 가는데, 도로변에 붙어 있는 배너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00사 일동.’ 어느 불교의 사찰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배너를 보면서 복잡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

‘내년 석가탄신일에는 우리 교회도 축하 배너를 걸어야 하나?’ ‘과연 저 사람들이 성탄절의 의미를 알고 있을까?’ ‘혹시 나도 그냥 성탄을 축하하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아닐까?’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명확하게 구별되는 기준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다른 종교는 사람에게 신이 되라고 합니다. 도를 닦거나 어떤 종교적인 과정을 통하여 신에게 나아감으로 결국은 신이 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런데 기독교는 사람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이 되십니다. 방향이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먼저 오십니다. 이것이 성탄절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대림절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준비하는 절기입니다. 어떻게 대림절을 준비해야 할까요? 어떻게 예수님과의 만남을 준비할 수 있을까요?

인생에는 분수형 인생과 폭포형 인생이 있다고 합니다. 분수형 인생은 자꾸 자신보다 더 높은 곳을 추구합니다. 더 낫게 보이려고 치장합니다.

높은 곳을 향하여 뿌려대야 하기에 언제나 지치고 힘들고 불안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고갈되어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뿜어대는 분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위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폭포형 인생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강력합니다.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낮은 곳으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 힘은 더 강력합니다.

예수님의 힘은 폭포의 힘입니다. 그래서 강력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거기다가 종의 모양으로 오셔서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는 강력한 폭포의 힘입니다. 이 힘이 이 세상의 구원의 길을 여는 거룩한 에너지가 되었고, 결국 하나님이 지극히 높이셔서 모든 무릎을 예수님의 이름 앞에 꿇게 하셨습니다.

당연히 성도의 길도 낮아짐의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눈높이를 우리에게 맞추셨듯이 우리도 세상을 향하여 그리해야 합니다.

성도의 길은 세상이 시사하는 방향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십자가로 직결되는 저 낮은 곳을 향한 움직임입니다.

이 길은 힘과 지배의 지도력이 아닌 하나님의 고난받는 종이신 예수님이 보여주신 스스로를 비우시고 낮추시는 무력함과 겸손의 길입니다. 우리는 이 길에서 비로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시대 최고의 영성학자인 헨리 나우엔에게 하버드대학 교수직은 아마도 그의 인생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인생의 절정에서 그는 어느 날 홀연히 하버드대학의  교수직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는 캐나다 토론토의 데이 브레이크라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소수의 정서 장애인들을 위해 떠나면서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그동안 나는 올라가는 길만 추구하였다. 어려서 천재 소리 듣고, 교수가 되어 존경받고, 책을 내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나는 오로지 성공만을 위해 살았다. 그러나 어느 날 정신박약인 한 소년을 만났을 때 이런 인간의 고통에도 하나님은 동참하시며 낮은 자리에도 계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오르막길에서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지만 내리막길에서 진정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대림절을 지나면서 낮은 곳으로 찾아오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더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겸손함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가 어렵고 궁핍한 이웃들을 관심과 사랑으로 보듬어 줄 그때 비로소 우리는 이 땅에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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