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큰나무교회)
어느 초신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목사님, 이슬람의 알라가 기독교의 하나님 아닌가요? 둘 다 같은 하나님이잖아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정의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신(God)의 정의는 무엇인가? 신은 최고의 존재(the Greatest Being), 완전한 존재(the Perfect Being)를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존재요, 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단 한 분뿐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왜 최고의 존재요 완전한 존재인가?’라고 반문한다. 그렇다면, ‘총각이 왜 결혼 안한 남자인가?’를 되물어 보라.

원래 총각의 정의가 그러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왜 완전하고 최고의 존재인가? 우리는 원래 그런 분을 하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기독교와 이슬람 중에서 과연 어느 신관이 창조주 하나님을 가장 잘 설명해 주고 있는가?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고 있지만 인격적인 신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알라는 유일신이면서 한 인격만 가졌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랑하는 존재가 되지 못하며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이슬람의 신관에 삼위일체 하나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최고의 존재요 완전한 존재로서 하나님을 설명하지 못한다.

기독교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다. 삼위일체란,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한 분이지만 그 위격은 세 분, 즉 성부, 성자, 성령으로 구분되어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1+1+1=1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1×1×1=1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성부 하나님도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고, 성자 예수님도 성부와 동일한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시며, 성령 하나님도 신적 속성을 가지고 계신다.

성경은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지만, 그 한 하나님 안에는 각각 개별적인 의지와 인격을 가지신 세 위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 신관은 논리적인 것인가? 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최고의 존재인 동시에 반드시 완전한 분이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도덕적으로도 완전해야 한다.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완전한 분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사랑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사랑하는 분이다. 사랑은 인격적인 행위로서 반드시 사랑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이 한 분이고 한 인격만을 가졌다면 과연 사랑의 대상은 누구인가? 교제의 대상이 없다.

따라서 이슬람의 알라와 같이 하나님이 한 인격만 가졌다면 그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사랑의 완전성을 유지할 수 없는 분이라는 논리적 귀결에 이른다.

바로 이런 문제점을 가진 신관이 이슬람의 신관이다. 이슬람의 알라는 본질적으로 한 분뿐이면서 오직 하나의 의지만 가졌기 때문에 다른 인격과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사랑하지 못하는 신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기독교의 하나님은 그 인격이 복수(세 분)이기 때문에 인간 창조 이전에도 완전한 사랑을 본성적으로 실행하고 유지할 수 있었다.

따라서 한 분뿐이면서 동시에 완벽한 사랑을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은 본질적으로 유일하면서도 세 인격을 가지신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하나님은 가장 논리적으로 타당한 신관이며 이슬람의 알라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삼위일체는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구분되는 세 인격을 가진 하나님께서 서로의 의견이 충돌되지 않고 내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서 상호 마음을 알고 이해하며 서로 자발적으로 사랑하고 의견일치를 보이신다는 비밀이 숨겨 있다. 분열이 있고 의견 충돌이 있는가? 삼위일체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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