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령의 역사로 은혜롭게 진행되던 초대교회는 ‘성도관리’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갈등을 경험하게 되는데, 오히려 그 사건은 효율적인 교회의 직제를 수립하는 긍정적인 계기가 된다.
본문은 그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데, 아쉬운 점은 원어본문에서는 세 번이나 반복적으로 사용되어 강조되고 있는 ‘디아코니아’(διακονία)라는 용어가 개역개정 등 한글번역에서는 위에서 보는 것처럼 경우마다 다 다르게 번역되어 원 저자의 의도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헬라어 ‘디아코니아’는 ‘섬김’, ‘사역’, ‘직분’ 등의 폭넓은 의미를 품고 있는 단어로서, 여기에서 ‘집사’(deacon)라는 단어도 파생되었는데, 이 단어는 그 의미의 포괄성으로 인해 번역과정에서 정확한 내용의 전달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단일사건에서 사용되고 있는 ‘디아코니아’는 하나의 개념으로 이해함이 더 적절할 것이며, 본문의 세 상황을 아우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섬김’이라고 할 수 있다.
초대교회의 직제가 수립되는 과정에서의 핵심 키워드는 예수님께서 몸으로 보여주셨던 삶의 덕목인 ‘섬김’이었다(마 20:28절의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에서도 본문과 같은 ‘디아코니아’의 동사형이 두 번 사용되었다).
헬라파 유대인들과 그 과부들이 서운하게 생각하고 원망했던 부분은 1절의 현 한글번역에서 읽혀지는 것처럼 단순한 ‘구제’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좀 더 폭 넓은 의미에서의 ‘섬김’ 즉, 교회의 관심과 돌봄의 행위에서 제외됨을 느끼고 불편해하였던 것이다.
그 복합적으로 쌓인 감정이 ‘식탁 섬김’(2절)의 문제로 표출되었다. 이런 문제에 휘말려 더 본질적인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된 사도들은 일반 ‘섬김’은 집사들에게 맡기고, ‘말씀으로 섬김’(4절)에 ‘힘쓰기로’(헬 ‘프로스카르테레오’: 어떤 방해가 있어도 끝까지 열심히 계속하다) 한 것이다.
따라서 초대교회의 전통, 사도와 집사의 전통에 서 있는 목회자와 직원의 사역 본질은 동일하게 ‘디아코니아’ 즉, ‘섬김’이라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직원도 목회자도 다 섬긴다. 누구와 무엇을 섬기는가? 주님을 섬기고, 교회를 섬기고, 성도를 섬긴다. 단, 그 매체와 방법에 차이가 있다.
직원들은 성도들을 접대하고 돌보고 챙기는 일로 섬긴다. 목회자는 말씀을 연구하고, 말씀에 붙잡혀, 말씀을 선포하고 잘 가르치는 일로 섬긴다.
직원들은 육적 양식을 성도들에게 공급하여 섬기는 일을 잘 해야 하고, 목회자들은 영적 양식을 성도들에게 공급하여 섬긴다. 다 ‘섬김’이다.
목회자들은 사도들이 결단하고 실행한 것처럼, ‘프로스카르테레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 일에 힘쓰고 최선을 다하여 섬겨야 한다.
또한 직원들은 목회자가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고 교회의 1차적 가치인 이 ‘기도와 말씀으로 섬김’에 집중할 수 있도록 ‘식탁의 섬김’을 책임지고 확실히 감당해야 한다.
이렇게 목회자와 직원이 각각의 ‘섬김’을 효율적으로 잘 감당하는 교회가 초대교회의 본을 좇는 성경적이고 이상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