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흔히 기독교 하면 사랑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된다고들 말한다. 이 말을, 교회가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고 해석 하는 것은 교회의 아전인수격 관점이다. 비기독교인들은 교회가 사랑의 실천을 비록 말뿐일지라도 강조했었기 때문에 얻게 된 평가일 뿐이라고 말한다. 교회가 제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느냐는 질문의 대답은 논외라는 것이다.

▨… 기독교가 말하는 사랑은 흔히 ‘아가페적’이어야 한다고 그 성격을 규정한다. 원인이나 조건, 한계가 없는 사랑이며 사랑받을 만한 이유가 없는데도 무한정의 사랑이 나에게 허락되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이고 그 구체적 모습이 십자가라는 것이다. 바로 이 아가페에서만 신적인 본성의 본질과 신학적 주제와 규범을 찾아내려는 신학의 노력은 정당하다고 페레(Nels F.S. Ferre)는 밝혔다.

▨… 신학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가페적인 것으로 밝히고 그 사랑의 실천이 하나님의 사람들의 의무임을 규정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려는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미련한) 것(고전 3:19)일까? 우리는 사랑을 실천한다고 하면서 반대급부를 계산하고 작은 교회를 돕는다고 하면서 그 도움이 과연 열매를 거둘 수 있을지를 미리 암산해보려 한다.

▨… 언제였던가, 작은 교회 담임자의 공제회비를 교회가 지원하자는 제안도 있었고 총회장이 바뀔 때마다 미자립교회 지원안은 단골메뉴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인 지원을 감당할 만한 아가페적 사랑은 애초부터 우리로서는 불가능한 것임을 감추려 한 것은 아닌지 물어야 할 때가 된 것은 아닐까. 작은 교회 담임자들의 상처만 깊게 하는 구호는 이제는 거둬들여야 한다. 그것이 보다 솔직해지는 길이다.

▨… 어느 교회가 땅과 건물을 마련해 주고 교회개척을 지원했다. 그러나 자립의 길은 요원하기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지원하던 교회가 증축으로 부채를 안았다. 빚을 갚아야 했던 교회는 아직 자신의 이름으로 등기되어 있는 작은 교회의 자산을 매각하기로 했다. 이것이 우리의 작은 교회 지원의 실체다. 이 일에 누가 돌을 던질 수 있는가? 어차피 인간의 사랑, 그 본질은 허망인 것을…. 그러나 입맛은 소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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