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봉 목사(대전동지방∙동대전교회)
미래한국 2014년 10월 제482호에 실린 윤주진의 글 ‘도덕으로 알 수 없는 것들’을 읽었다. 필자에게는 오늘의 난세에 대한 현명한 해석과 처세의 방향을 깨우쳐 주는 글이라 생각하여 독자들과 교류하고 싶어 요약하여 게재하고자 한다.

“인간의 오만은 다양한 형태로 드러난다. 누군가는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를, 또 누군가는 명석한 두뇌를, 아니면 엄청난 부와 명예를 뽐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오만은 어쩌면 ‘도덕적 오만’이 아닐까. 도덕이라는 것이 각자의 생각과 의견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독단의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도덕적 오만에 대한 철저한 경계가 필요하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많은 생명을 잃은 슬픔 가운데 우리는 사랑하는 동역자 한 분을 하나님나라로 먼저 보낸 슬픔을 가슴에 담고 있다.

세월호 사고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부패를 드러낸 국가적으로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국민에게는 정부에 실망감을 갖게 하는 사건이었고, 국민들은 생각의 지도에서 국민들이 서로 신뢰할 수 없는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하는 사고였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슬픔보다는 진상규명과 배상, 안전대책 수립과 같은 미래적 문제를 논의할 차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도덕 감정을 내세우며 ‘내 편은 선이요, 저들은 악’이라는 이분법의 프레임으로 세월호 사고를 끌고 가는 이들이 보인다.

‘어떻게 아이들이 죽었는데 이럴 수 있느냐’ ‘당신들 아이들이 죽어도 이럴 것이냐’등 감정에 호소하는 말들이 난무하면서 국가 공동체 운영질서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들은 증발돼 버렸다. 도덕보다는 실리가 더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미국 사회의 진정한 힘이다.

“아이들 밥 먹는 것 갖고 왜 그러느냐”라는 말 한마디에 무상복지에 대한 진지한 담론이 묻혀버렸고 “농민들은 전부 죽으라는 이야기냐”는 말 한마디에 무역으로 예상되는 손익계산이 가려졌다. “돈이 없으면 공부도 하지 말라는 거냐”는 말 한마디에 등록금 토론은 막혀 버렸고, “골목 상권은 망해도 된다는 것이냐”라는 말 한마디에 대형마트 규제에 대한 반론은 설자리를 잃었다. 계속해서 이런 식으로 간다면 대한민국에서는 보다 치열한 토론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이제 우리 모두 도덕이라는 마법의 단어에서 정치를 꺼낼 시점이 되지 않았을까.”

위에 요약하여 소개한 자유공방 대표 윤호진의 글을 혹자는 보수논객의 글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도덕적인 힘을 뒷받침하는 실리의 힘이 발휘되는 세상을 우리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본 회퍼’의 묵상시 ‘선한 힘’을 떠올려본다. 부패한 사회에 부패한 교회가 있었다는 역사의 기록에서 순교자적 죽음으로 인해 자신의 신학을 돋보이게 한 ‘본 훼퍼’의 ‘신앙양심에 따른 신앙고백’을 생각해 본다. 교회와 목회자가 신뢰받을 수 있는 곳의 우선순위에서 신뢰할 수 없는 곳의 우선순위에 교회와 목회자가 앞을 차지하고 있다.

잃어버린 ‘여호와께 성결’을 찾아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들이여! 난세의 현실에서 도덕적인 힘을 뒷받침하는 실리의 힘을 회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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