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모범 장로, 가정의 모범 가장

임용희 장로는 총회나 초교파 차원에서 바쁘게 활동 하면서도 교회의 장로직과 가장으로서 소홀함이 없이 사명을 잘 감당했다. 먼저 은평교회의 개척자의 한사람으로, 선임장로로 그의 임무는 막중하다. 흔히 큰 교회의 선임장로라면 교역자와 신자들에게 권위적으로 대하기가 쉬운데 임용희 장로는 그렇지 않았다.

그와 함께 30여년 함께한 이병돈 원로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임용희 장로는 후배장로나 협동장로들이 소외감이 들지 않도록 언제나 따뜻하게 대하고 배려할 뿐 아니라, 담임목사는 물론 부목사에게까지 말씀에 순종하고 존중하고 협력을 아끼지 않음으로 교역자들이나 후배 장로들에게 아낌없는 존경을 받았다고 했다.

특히 이병돈 목사가 부임하여 5년 동안은 함께 당회에서 모든 일을 의논하여 처리했지만 5년이 지난 어느 날 임용희 선임장로가 당회에서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것은 인사문제는 물론 교회 발전에 관한 계획에 이르기까지 담임목사가 제안하면 무조건 이의 없이 받기로 결의하자는 것이다.

그때부터 은평교회는 당회에서 ‘아니요’라는 말이 사라지고, 담임목사가 제안하는 것마다 만장일치로 결의해주어, 목회하기가 쉬우면서도 그만큼 책임감이 크기 때문에 하나의 안건을 제안하기 위해 담임목사는 더욱 기도하고 철저히 준비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임용희 장로는 목회자의 긍정적 협력자로서 당회의 질서와 분위기를 닦아 놓아 그가 은퇴하고 소천한 후에도 은평교회의 당회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교회성장에 기여한다.

또한 임용희 장로는 바쁨 속에서도 가정목회에 충실했다. 슬하에 5남 2녀를 성장시키는데 총회의 박봉으로는 경제적 어려움이 많았지만, 그는 신앙적으로 정신적으로 자녀들을 양육하는데 힘썼다. 가훈은 경천애인(敬天愛人), 즉 하나님과 사람(이웃)을 사랑하라는 것과 근면성실(勤勉誠實), 즉 부지런하고 성실하라는 것이다. 경천애인은 신앙적 목표요, 근면성실은 삶의 지표였다. 이 가훈을 그는 가정예배를 드릴 때 설교나 기도로 자녀들의 의식 속에 깊이 박히도록 강조하고 가르쳤다.

또 그는 친히 시편 112편을 아무 막힘없이 줄줄이 암송하고, 이것을 자녀들에게 암송시키며 신앙과 삶의 지표가 되도록 했다. 그의 철저한 가르침의 덕택으로 슬하의 5남 2녀는 모두 하나님의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일하고 있으며, 사회에서도 유용한 인물로 일했다.

장남 임영건 장로는 일찍이 은행계에서 한국상업은행 종로지점장 등 6개 지점장을 역임한 후, 본부 총무부장직을 끝으로 정년퇴직했고, 부친과 함께 은평교회의 장로가 되어 부자간의 시무장로로 교회를 섬겼다. 차남 임영철 장로는 일찍기 교직에 헌신하여 여러 중,고등학교 행정실장으로 33년간 근무를 마치고 정년퇴직했고, 형과 함께 3부자 장로로 유명했다.

3남 임영훈 선교사는 공직에 근무하다 사명을 받아, 현재 말레이시아 선교사로 원주민 선교에 헌신하고 있으며, 4남 임영재  집사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헌신하여 울산대 미대학장을 역임하고 교수로 재직 중이며, 5남 임영한 집사 역시 홍익대 미대를 졸업한 후, 현재 기업을 경영하고 있다.

그렇게 건강하고 활발하게 일하던 임용희 장로는 2006년 11월 10일, 지병으로 84세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반평생을 장로교회 신자와 장로로 섬겼던 그는 성결교회 토양으로 옮겨와 평생을 교회와 성결교단을 위해 충성을 다했고, 동시에 모든 사람들을 따뜻하게 품었다. 성결인 임용희 장로는 지금도 자녀손들을 통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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