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연 교수(서울신대 예배학)
10월 9일은 한글날이었다. 매년 그렇듯이 한글날이 되면 우리말을 정확하게 사용하자는 권고를 방송이나 신문 등 대중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된다. 차제에 그리스도인들이 혼동하기 쉬운 ‘예배’와 ‘예식’이라는 단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기독교에서 ‘예배’를 뜻하는 여러 단어가 있지만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쓰이며 기독교적 특성이 반영된 단어는 ‘리터지(liturgy)’이다.

리터지는 헬라어 ‘레이투르기아(leitourgia)’에서 온 말로서, ‘사람들’ 또는 ‘백성’을 뜻하는 ‘라오스(laos)’와 ‘일’ ‘봉사’ ‘직무’를 뜻하는 ‘에르곤(ergon)’의 합성어이다. 두 단어를 합하면 예배는 ‘사람들의 일’이라고 정의된다.

‘리터지’는 영어식 표현으로, ‘전례’ 또는 ‘예전’으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는 1세기 서방교회에서 교회 목회자의 직무와 거룩한 예배의 모든 행위를 지칭하는데 사용됐다. 4세기 동방교회는 이 단어를 오로지 성만찬(Eucharist)이 있는 예배에만 사용하였다.

어쨌든 ‘리터지’라는 단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예배의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째, 예배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행위 즉,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행하는 공적인 경배의 행위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TV나 컴퓨터 앞에 앉아서 또는 골방에서 홀로 드리는 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예배는 공동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의 행위이기 때문에 어떤 사적(私的)인 목적을 위한 행위 또는 다른 어떤 이유로 드리는 것이 될 수 없다.

예배는 온전히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와 감사를 드리기 위해 행해진다. 따라서 교육이나 전도 또는 다른 어떤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이유로 한 것은 예배라고 할 수 없다.

그에 비해서 ‘예식(rite)’은 좀 더 포괄적인 용법으로 사용된다. 예식이라는 말은 손을 씻는다든지 또는 먹고 마시는 것 등 본래적으로 인간의 기본적 행위에 근거를 두고 있지만 특별히 종교적 행위를 형성하는 형식적인 행동을 지칭하는 데 사용된다.

예식은 반복적으로 행해지는 가운데 참여자들로 하여금 그 의미를 인식하게 하거나 강조하고 또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과정에서 그 예식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체적인 정체성을 부여하고 또 강화하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한다.

예식이라는 말은 포괄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기독교 예식’ ‘불교 예식’ 처럼 특정 종교를 나타내는 단어와 함께 사용될 때에 그 용법이 분명해진다. 이에 비해서 ‘리터지’라는 단어는 다른 종교에서는 전혀 사용하지 않고 오직 기독교에서만 사용하는 용어이다.

가톨릭교회는 ‘성례전’ 개념으로 접근하여 결혼이나 장례 등을 모두 ‘성사’(聖事)라고 하며, ‘미사’라는 말은 오직 주일 낮예배에만 국한시킨다. 대한성공회 역시 혼인이나 장례에는 ‘예식’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전례’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주일 낮예배와 구분한다.

위의 내용을 종합하면, 주일 낮에 행하는 것은 ‘예배’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 그리고 주일 저녁이나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에 행하는 모임도 순전히 주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 위한 의도로 행해진다면 이것들도 ‘예배’의 범주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결혼, 장례, 출판, 임직, 생일 등 인간의 생로병사와 관련된 경우에 모이는 행위는 비록 그 안에 찬송과 기도와 설교가 있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고 하더라도 ‘예배’라는 용어를 사용하기에 적절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예식들이 기독교적 전통 안에서 전승되고 구조화, 체계화된 의례(儀禮)의 행위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이 예식들을 통한 성령의 임재와 은총이 주어지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서 하는 행위는 모두 주님께 찬양과 감사를 돌리기 위한 것이지만 그 동기와 용법에 따라서 용어를 ‘예배’와 ‘예식’으로 구분하여 사용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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