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원 목사(소망세광교회∙드루대 신약 Ph.D)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λογικός)예배니라”(롬 12:1)

헬라어로 쓰인 신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그 뜻이 제한되고 심지어는 왜곡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로마서 12장 1절도 그 중의 하나이다.

필자가 다루려고 하는 본 구절에서의 핵심적인 문제는 ‘영적 예배’로 번역된 부분인데, 여기에서 ‘영’은 ‘프뉴마’(πνεμα)같은 일반적으로 ‘영’을 의미하는 단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라, ‘로기코스’(λογικς)란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사실 ‘로기코스’를 ‘영적’이란 단어로 번역하여 이해하는 것이 썩 만족지 않음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성경에서 성경난외주에 그 번역을 ‘합당한’으로 부연하고 있음에서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본문의 해석에 ‘합당한’이란 난외주 부연설명이 필요한 것일까? 또한, ‘로기코스'는 신약에서 이곳 외에 베드로전서 2장 2절 ‘순전하고 신령한 젖’에서 한 번 더 나오는데, 여기 ‘신령한’이 ‘로기코스'를 번역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도 여러 영어성경에서 ‘말씀의(of the Word)’로 번역되고 있다. 특히 소문자 ‘말씀’이 아닌 대문자 ‘말씀’으로서, 그 단어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성이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렇다면, 왜 ‘로기코스'가 ‘말씀의’로의 번역도 가능한 것인가? 그 이유는 ‘로기코스'가 어원적으로 갖고 있는 심층적 의미에 있다.

‘로기코스'는 그 어원이 ‘로고스’(λόγοs)에서 온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의 의미를 염두에 두고 ‘로기코스'를 이해해야 한다. ‘로고스'가 무엇인가? 간단히 정리하자면, 헬라인들이 추구한 절대이성이다.

헬라인들은 합리적으로 창조되고 진행되는 우주에 절대이성, 절대 합리성이 있고, 그 궁극적 존재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그 ‘로고스’, 즉 우주적 지성, 이성, 합리성, 인격으로서의 말씀이 바로 예수시라고 사도 요한은 선언한 것이다.

‘로기코스’는 이 ‘로고스'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태생적으로 그 의미를 품고 있다. 그래서 헬라어 문헌들에서 ‘로기코스’는 동물의 속성과 대비되어 인간에게만 있는, 신적인 속성으로서의 합리성과 지성적 요소를 나타내기 위해 쓰였다.

또한 저차원적이고 미신적인 종교행위와 반하는 개념으로의, 차원이 높은 합리적인 종교성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참 지식으로 충만하고, 그 안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하여, 그 안에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이해 가운데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일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로기코스’는 그런 행위를 말한다.

따라서 로마서 12장 1절에서 바울사도가 요구하는 ‘로기코스한 예배’(‘예배’로 번역된 ‘라트레이아’ (λατρεα)도 단순한 ‘예배’ 보다 포괄적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지만, 논지가 분산되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는 ‘예배’로 번역해 둔다)란,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지, 무엇이 참 그리스도인의 삶인지를 말씀과 함께 고민하여 가장 합리적인 것으로 드리는 신앙적 행위를 의미한다.

본문을 ‘영적예배’로 읽을 때 ‘영적’이라는 단어의 느낌에서 자칫 오해하기 쉬운, 내 감정의 몰입이나 무엇에 심취하는 황홀경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바를 말씀에 따라 합리적으로 구하고 그 하나님의 기준에 맞춰가는 예배이다.

하나님 중심적인 예배이다. 동물처럼 육적만족을 구하는 소위 기복적인 예배가 아닌, 더 합목적적인 신앙의 가치를 완성하는 예배이다.

감각적인 예배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지성적인 예배이다. 생각 없는 예배가 아니라 생각이 있는 예배이다. 진리 안에 드리는 예배다.

무엇보다도, 참 이성, 합리성의 본체이시며 실체이신 ‘로고스’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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