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열 장로(총회 부회계∙정읍교회)
기독교인이면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베다니에서 예수님을 만나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고 제자가 되었으며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복음의 가치를 확실하게 고백했던 사람이다.

또 베드로는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는 첫 기적을 일으킬 때도 함께 있었고 예수님의 많은 이적과 기적을 직접 체험하면서 예수님을 믿고 따랐다.

그런데도 그는 마태복음 26장에 나타나 있듯이 결정적일 때 예수님께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것에 앞서 예수님이 대제사장에게 끌려갈 때 멀찍이 거리를 두고 따라만 가는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베드로가 결정적일 때 왜 예수님께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찍이 따라가는 심리 상태를 보였을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믿음과 용기는 없어지고 자신도 붙잡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가득 차 있었던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붙잡혀 가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그들에게 저항하지도 못하고 그저 체념한 상태로 멀찍이 따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결정적일 때 예수님을 외면하고 회피하고자 했으며 예수님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 일원이 되고 싶지 않은 심리상태였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히 떨어져 거리를 두고 그 결과를 관망하는 소극적인 심리상태였으며 결정적일 때 남의 눈을 속이고 거짓말을 하면서 예수님을 저주하면서까지 부인하는 심리상태를 보인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가운데 긍정적인 태도를 많이 갖고 있지만 결정적일 때 부정적으로 돌변하여 성숙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는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확실히 믿는 성도는 세상의 이치에 짓눌려 비겁하게 살아가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수님 때문에 자신에게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끝까지 예수님을 가까이 하고 예수님을 믿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일원이 되고자 하는 노력으로 교회 안에서나 밖에서 정의를 불태우고 어떤 일에 관망하며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지 않고 복음의 믿음 안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해 보려는 긍정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베드로가 결정적일 때 부정적이고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지만 그나마 뒤늦게라도 심히 통곡하며 회개했다.

만약 베드로가 자신의 실수를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잘못을 뉘우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천국 복음을 전하다 순교를 당하는 믿음의 용기 또한 가질 수 있었겠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베드로도 인간으로서 연약한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복음 때문에 살고 복음 때문에 순교했던 인물이었기에 위대한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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