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 1:1)

박태일 목사(경기서지방∙대명교회)
인생의 길이를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인생의 남은 때를 인간적인 욕망을 위해 살 것인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 것인지(벧전 4:2)를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삶의 환경 역시 우리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바라봄의 법칙으로 앞날을 긍정적인 마음으로만 바라볼지라도 맑고 밝은 날만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주어진 환경에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인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결정과 선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한 줄 일 것입니다. 주님은 완전한 분이시기에 정확히, 아주 정확히 우리의 인생을 평가하실 것입니다.  

욥기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욥을 이렇게 평가하십니다.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난 자더라.” 3절에서도 그의 소유를 말씀하실 때에도 “양이 7000마리요, 낙타가 3000마리요, 소가 500겨리요, 암나귀가 500마리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부자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소유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의 성품, 그의 사람됨으로 그를 평가하셨습니다. 욥의 온전함, 정직함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진 열매입니다. 마치 성령 충만의 결과가 성령의 9가지 열매, 그리스도의 성품이듯이….

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은 우리를 주님은 어떻게 평가하실까요?

사역자로 부름 받은 사명자인데 대부분 정직하고 온전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경우, 세월이 가면 갈수록 실수와 허물이 더 쌓일 뿐 정직하고 온전해지려는 자신의 노력과 상관없이 여전히 온전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은 내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럼에도 나는 새로워지고 있음을 느낀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나의 부족함을 채우시기 때문입니다. 나의 부족함을 통해 교훈하시며 죄를 씻으시는 주님의 은혜가 있기에 나의 영이 새롭게 됨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그분의 권위와 거룩하심에 공경과 두려움을 갖는 마음입니다. 하나님 그분의 성품과 본질을 알기에 사랑과 존경으로 반응하는 태도입니다.

욥은 자녀들의 생일잔치를 마치면 혹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하여 번제를 올려 드렸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욥의 삶의 태도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살아 갈 수만 있다면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만한 예배가 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누구나 그러하듯이 저 역시 우여곡절이 많은 목회였습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어려움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머물며 주님께서 기뻐하실 선택이 무엇인지를 묵상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신학대학원 2차 때 개척 후 지금까지 한교회에서 섬겼으니 목회를 할 만큼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제 남은 목회의 때가 얼마이든 대충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말하고 노래하고 선포하며 경배는 하지만 정작 따르지 않고 가지 않는 그 길, 다시 그 길을 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의 소원이 있다면 마지막 때에 “내가 사랑하는 충성된 종”이라 하는 한 줄의 평가서를 주님께 받는 것입니다. 이 소원이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며 소망의 이유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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