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만큼 한국을 사랑한 분

홍성철 박사(전 서울신대 교수)
J.B. 크라우스(Crouse) 목사님은 1959년부터 1992년까지 34년이란 인생의 황금기를 한국을 위하여 바친 선교사십니다.

그는 한국에 도착하자 즉시 전쟁 때문에 굶주리고 헐벗은 한국인을 위하여 흙탕길 위로 트럭을 몰고 전국을 다니면서 음식과 옷과 의약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대략 하루에 7만5000명이 10년 동안 혜택을 입었습니다.

그의 공헌이 인정되어 1968년에는 대통령표창까지 받았습니다. 이렇게 처음 10년간 육신적인 필요에 전념했다면 그 후부터는 복음전파를 통하여 한국인의 영적 필요에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쏟았습니다.

1973년부터 1977년 4년간 60만 명의 한국인에게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베티 사모님은 연세대학교 간호학 교수로 섬기는 등 크라우스 선교사 부부는 한국인의 육적, 영적, 정신적 필요를 위하여 하나밖에 없는 인생을 불태웠습니다. 이분만큼 한국을 사랑한 외국인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비전을 실천한 분
크라우스 선교사님은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서울 곳곳에 시민아파트가 건축되자 그곳 주민들을 전도하기 위해 ‘특수전도회’를 구성했습니다. 특수전도회는 아파트, 군대, 학교, 도시연합집회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영화상영이나 훈련, 직접 전도 등 다양한 방법으로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전도했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받아들였습니다.

크라우스 선교사님은 이렇게 34년을 헌신하다 OMS 총재로 부르심을 받아 1992년 한국을 떠났습니다. 그때까지 OMS는 약 90년 동안 14개국에서 선교사역을 감당했으나, 크라우스 목사님이 총재로 봉직하시는 14년 동안 선교지가 42개국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분의 비전이 없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은 쾌거였습니다.  

협동사역을 실시하신 분
크라우스 선교사님은 일찍이 혼자서는 큰 일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팀 목회(team ministry)를 실천하신 분입니다.

한국에서 특수전도회를 이끌 때 그 당시 집사였던 김병기 장로와 직분도 없는 평신도인 저와 팀을 만들었습니다. 평신도도 동역자로 함께 일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의 팀 목회라는 본을 따르셨기에 그처럼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들었습니다.

크라우스 목사님이 OMS 총재로 봉직하는 동안에는 사모님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많은 분들과 협력사역을 했습니다. 그런 사역을 통하여 한국과 OMS, 그리고 세계적으로 많은 업적을 이뤄냈습니다. 협동했기 때문에 그분은 큰 일도 해내셨을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분이 되셨습니다.
  
주님을 초지일관 사랑하신 분
크라우스 목사님은 2014년 6월 22일 주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주님을 남다르게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을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전하려고 노력했고,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오직 주님만을 위하여 사신 분입니다.

물욕과 명예욕을 초월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을 사랑하며 전하신 순수한 분입니다. 한마디로 그분의 삶은 주님과 복음전파만을 위한 단순하고도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처음과 마지막이 한결같은, 참으로 많은 사람이 본받아야 할 분입니다.

저에게 영향을 미친 분
마지막으로 크라우스 선교사님은 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입니다. 그분 때문에 평신도로서 전도사역에 뛰어들 수 있었고, 애즈베리신학교와 보스턴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이 보여주신 선교사의 삶을 따르기 위해 저도 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했습니다. 그분이 성결교단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에서 고난과 인내의 의미를 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J. B. 크라우스 선교사님을 통하여 저를 훈련시키시고, 그리고 사용하셨습니다. 선교사님, 평안히 가십시오! 사랑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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