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타리파는 남부프랑스에 있는 그들의 중심무대, 알비시의 이름을 따라 알비파로 불리기도 했다. 이들 중 일부는 마니교적 이단으로 불가리아에서 일어난 보고밀(Bogomils)파와 만나기도 했는데, 마니교의 이원론에 영향을 받아 물질과 영혼이 대립 관계에 있다고 여겼다.
따라서 그들은 금욕의 실천을 매우 중요시했다. 카타리파는 물질은 악한 것이며 영적인 것만이 선하다고 여겼기에 구원은 육체의 욕구를 죽임으로써 이룰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러므로 금욕이 카타리파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들에게 성적(sexual)인 모든 것은 금기였다. 자손의 증식은 영혼의 노예인 육체를 증식하는 것이고, 완전은 전적인 순결 유지를 통해 이룰 수 있다고 믿었다.
부부의 성관계는 어쩔 수 없지만 내연의 관계가 결혼보다 덜 지속적이므로 더 완전하다고까지 생각했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기기까지 했다.
그들은 또한 생식에 의해 생겨나는 것을 먹는 것은 악마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고기, 우유, 달걀, 버터, 치즈 혹은 기타 짐승들의 생식과 관련된 모든 음식물을 먹지 않았다. 그렇지만 생선은 먹었다. 그 이유는 어류 역시 성관계를 통해 번식한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사탄이 물질인 세상을 만들었는데 그 사탄이 바로 구약의 하나님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구약성서를 거부하거나 개편해서 사용했다. 그에 반해 신약은 인자한 하나님의 계시로 여겼다.
그들은 신약의 하나님은 빛의 왕국으로부터 쫓겨난 후 육체에 갇힌 인간 영혼의 창조자이고, 이 땅은 인간 영혼을 위해 존재하는 지옥으로서 형벌의 장소라고 보고, 영혼 속에 있는 신성을 해방하기 위해 하나님이 피조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고 믿었다.
그들은 육체를 악한 것으로 여겼기에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했으며, 예수는 마리아의 몸을 빌려 난 천사로서 단지 모양으로만 인간으로 살았고, 고난받은 것처럼 보였을 뿐이며 구원사역은 이루지 못했다고 믿었다.
또한 그들은 교회의 성사(sacraments)들을 거부하고, 교회는 타락했기에 사도적 계승자가 아니라고 믿었다. 오직 사도적 금욕을 행함으로써만 사도를 계승한다고 믿었으며, 성사의 효력은 그 집행자의 정결성과 완전성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들은 유아세례를 거부하고 임종 직전에만 세례를 받았다.
또한 연옥설을 거부하는 것에서 지나쳐 완전을 이루기 전에 죽은 자는 다시 인간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었다. 그들의 유일한 기도는 ‘주의 기도’였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교리도 우화나 비유로 보았다.
그들의 사상은 프랑스의 낮은 신분의 사람들, 장인들과 농민들 사이에서 널리 유포되었다. 프랑스의 카타리파들은 농촌에 광범위하게 거주했고 이탈리아에서는 도시에 집중되어 있었다. 교회는 이들을 조사·처벌하기 위해 이단 신문을 했고 도미니크 수도회가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이들은 툴루즈공의회(1119)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고, 라임공의회(1148)에서 프로방스와 개스코니의 카타리파를 추방했다. 투르(1163)에서는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체포할 것을 논의했으며, 제3차 라테란공의회(1179)와 1198년 이노센트 3세에서 다시 이단으로 확정되었다.
최근 세월호 사건과 함께 구원파가 주목받고 있다. 어디 구원파뿐인가? 미혹의 영이 기독교의 탈을 쓰고 버젓이 행세하며 주님의 교회를 흔들고 있다. 현대의 모든 이단은 고대와 중세에 이미 준동했던 것들이고 이미 정죄된 것들이다. 역사를 알면 이단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