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호 목사(꽃자리출판사 대표)
한국 사회가 난마처럼 얽히고 있다. 그러나 수습책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사회를 이끌고 있는 정치권이나 지식인 사회, 특히 종교계조차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일어난 사태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다.

사회적 방어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그대로 드러낸 재난 피해도 그렇고, 갈등이 첨예한 정치적 현안과 관련해서 사회적 조정력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세월호 참사, 군부대 병사 사망, 사건 사고 등으로 드러났다. 또다시 한국사회를 소용돌이치게 하는 세월호 참사 특별법 문제도 우리 사회의 수습 능력을 시험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의 낙후성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자고 나면 무수한 문제가 한국 사회를 기다리고 있고, 터지는 소리는 나지만 제대로 수습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잊혀지고 또다시 반복된다.

갈등과 대립이 격화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은 실로 사회 구성원들을 매우 피로하게 만들며, 공동체 전체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과정을 비합리적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태가 이렇게 되면 합리적 논의의 공간은 소멸하고, 힘이 있는 쪽에서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사회적 상식이 되어 간다. 그러면서 문제의 본질은 어디론가 실종되고 방법론상의 소모적인 논쟁과 대결이 주가 된다.

정작 해결해야 할 사태의 핵심은 이렇게 해서 가려지고, 잘못된 선택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더욱 늘어나 우리 사회가 감당해야 할 부담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심화되어 가면 사람들의 신경은 더더욱 날카로워질 것이며, 문제 해결의 성숙도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몰리다 보면 문제의 시작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빠져든다.

그리고 모두가 그 미로에서 헤매면서 누군가를 질타하고 비난하며 책임을 전가하는 상황이 증폭된다. 이리떼와 같은 대립과 충돌이 점차 일상화해 가는 것이다. 권위 있는 심판관도 없으며, 누구나 따를 수 있는 원로도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런 사회에 환멸을 안 느낄 사람은 없다. 그 격돌의 와중에서 공동체의 공동 이해는 손상되고 치열한 갈등의 과정에서 형성된 적대감은 문제 해결을 더욱 가로막는다.

적대감이 형성되면 편가름이 시작되고 그로써 합리적 논의와 대화의 통로는 막힌다. 결국 상호 적대감이 날로 깊어지면서 한국사회는 내부적 합의가 기반을 잃어버리고 사회 통합의 능력이 공중 분해되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내부적으로 심각한 해체의 과정을 겪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극도의 이기주의와 문제 해결의 극단주의, 그리고 폭력적 해결 과정으로 점철된 사회로 옮아가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사회는 문제가 일어나면 그것을 서로 차분히 짚어 가면서 대화하고 숙의하는 훈련이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먼저 차분히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하는 능력보다 ‘듣는 힘’이다.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화가 범람하는 사회에서 해결책의 싹은 발견될 수 없다. 일방적 주장만 난무할 뿐이다. 그러니 힘이 있는 자의 주장이 대세를 쥐는 것은 당연하다. 권력과 재력이 결합할 때 힘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침묵당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신앙인들은 이 시대의 희망을 선포하고 그 희망을 현실로 만들어 내야 한다. 따라서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희망을 위한 ‘기도’이다. 기도는 자신의 목소리와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시간이다.

신앙인들은 우리 사회에 이 ‘듣는 힘의 비밀’과 그 신비한 결과를 일깨울 수 있어야 한다. 들음에서 희망의 싹을 간파해 내고, 희망의 실존을 이루어 내야 한다.

저마다 자기 목소리만 높이는 현실에서 조용히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마음에 다가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을 담은 해결의 길을 진지하게 내놓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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