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개 교회 목회 중 11번 배척, 2번 시무한 교회 3개 교회

황신행 목사는 6명 모이는 대사리교회에 부임하여 열심히 전도해서 150명까지 부흥시켰다. 그 기세로 교회 건축까지 마치고 나니 신자들이 배척했다. 마침 전에 그가 시무한 안동교회에서 또 청빙을 하자 곧 대사리교회를 떠나 안동교회에서 3년간 일하다가 성동교회로 부임했다.

이 교회는 10년 된 교회인데, 이상하게 1년에 한 번꼴로 교역자를 바꾸니 교회가 성장할 턱이 없어 겨우 10명이 예배드렸다. 전도의 특기가 있는 그는 열심히 전도해서 80명이 모이는 교회로 성장시키고 시무 7년째인 1980년에 만 70세가 되어 이 교회에서 정년은퇴했다. 

그의 목회경력을 보면 특이했다. 보통 교역자가 한 교회에 두 번 시무하기가 어려운데 그는  목회지 13개 교회 중 2번씩 시무한 교회가 3개 교회나 되었고 또한 한 교회에 7년 이상 시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까 짧게 여러 교회를 시무하였다. 무슨 이유일까?

“이유야 뻔하지요. 나는 13개 교회 목회 중 11번이나 배척을 받았어요. 약한 교회에 가서 부흥시켜 놓으면 이상하게 신자들이 배척해요. 나는 그것도 주님의 뜻이라고 봤어요. 대장이 떠나라고 하시면 떠나야지요. 그래서 이유도 묻지 않고 보따리를 쌌지요. 남들은 나를 보고 억울하지 않냐고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에게 배척당하고 고난 받으신 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지요.” 이는 그가 생전에 필자와의 대담 중 고백한 내용이다.

34년 동안 그가 시무한 13개 교회 중 큰 교회는 단 한 곳도 없었고, 약한 교회에 부임하여 부흥시켜 놓으면 신자들이 배척할 때마다 저항 한 번 없이 11번이나 떠나 또 몇 명 안 모이는 개척교회로 갔다.

이것이 예수의 졸병의식으로 산 그의 목회철학이었다. 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이런 주의 졸병의식 때문에 경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는 은퇴 후 부산 금정동 장남의 집에서 편안한 삶을 누렸다. 건강하던 그는 1986년 9월 29일에 갑자기 밤에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하나님의 품에 안겼다. 향년 77세였다. 그리고 류순이(柳順伊)사모는 남편이 떠난 후 11년 후인 1997년 5월 10일에 남편의 뒤를 따라 하늘나라로 갔다.

대장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졸병이 된 의식으로 평생을 고생하며 목회한 황신행 목사, 그의 자녀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는 모두 3형제를 두었는데, 자손들은 다음과 같다.

그의 장남 황중광 장로는 온천중앙교회 원로장로이며, 대우자동차 생산담당 이사 및 자동차 관련 회사 전무를 지낸 후 현재는 무역회사(진성) 고문으로 있다. 큰자부는 김은숙 권사(온천중앙교회)이며, 큰손자 황성학 집사는 성악가로 음악활동과 함께 대학에 출강하고 있고 손부 정인경는 집사다.

증손은 황시온이며, 큰손녀 황성원 집사(온천중앙교회)는 의상디자이너로 작품 활동과 함께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손서는 성현무 집사, 증손은 성영인, 예인, 지후 그리고 차손은 황성욱 집사(온천중앙교회)로, 현대자동차 과장(현)이며, 손부로 박미소 집사가 있다.

그의 차남은 황성수 집사(풍각교회)로, 국제상사 생산차장 및 P.T.Truba(인도네시아 현지 신발공장) 공장장을 지낸 후 현재 경북 청도에서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자부는 이정숙 집사, 손자는 황주영이다. 또 3남 황인수 집사(활천교회)는 대우자동차 영업과장을 하다 개인회사를 운영하고 자부 김영란 집사는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있다. 손자는 황성우, 황성운이다.

황신행 목사의 후손들은 황 목사의 신앙유산을 잘 이어받아 성결교회에서 장로나 권사, 또는 집사로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하나도 잘못되지 않고 바르게 성장한 황 목사 후손들의 삶을 보면서, 그의 가문을 도우신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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