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서울중앙지방∙성락교회)
태풍 덕분에 한여름에도 바람이 불고 비도 내리며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태풍이 오는 것은 피해가 크지 않다면 괜찮은 점도 있다. 늘 그렇듯이 여름 더위 끝자락과 가을 초엽에 태풍 두셋은 더 지나갈 테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언론에서 다룰 태풍 같은 이슈가 즐비하다. 국내만 봐도 그렇다. 4·16 세월호 참사와 군대 폭행치사 사건 그리고 국회의원 재보선 이후의 정치적 상황 등 쓸 거리가 넘친다.

국제적으로도 가자지구의 전투, 미국의 폭격으로 발발한 제3차 이라크전쟁, 서아프리카발 에볼라 충격, 여전히 심각한 동아시아의 긴장이 그렇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2014년 8월은 다른 무엇보다 교황 방문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교황 방한이 어떤 점에서는 이런 이슈들을 압도하는 듯하다.

교황 방한에 즈음하여 가톨릭을 보는 눈이 여러 가지다. 기독교(개신교)의 시각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뉠 것이다. 먼저 교황을 적그리스도로, 가톨릭을 이단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세계교회협의회(WCC)를 극력하게 반대한 사람들과 시각이 겹칠 테다.

다음은 가톨릭을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 보고 서로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이번 교황 방한을 따뜻하게 맞아야 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마지막은 성서에 근거한 신학과 교리의 차이점은 분명하게 인식하되 인도주의적인 교양과 상식의 차원에서 교황 방한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우리 사회의 시각은 거의 나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방한을 반기고 고마워하며 환영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교황은 범그리스도교 갈래 중 하나인 가톨릭의 수장이지만 바티칸이라는 국가의 원수이기도 하다. 정부 차원에서는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 원수의 방한이라는 점에 맞춰 의전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래저래 교황 방한은 국가적이며 사회적인 큰 행사로 성황리에 진행될 것이 분명하다. 광화문에서 열리는 시복식은 그 정점이 될 테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예상치 못한 서민적 행보가 만들어 낼 감동적인 이야기도 여럿 될 것이다.

중요한 점 하나를 보자. 사회적 현안에서 가장 중대한 것이 교황 방한과 연관돼 있다. 세월호 참사 말이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 제정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쪽에서 교황이 여기에 힘을 실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이런 요구를 반대하는 편에서는 교황이 이 사안에 어떤 행보를 취할지 걱정될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를 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각과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한국 가톨릭의 입장을 생각하면 세월호 참사를 이 정도에서 적당히 덮고 싶은 집단에는 교황의 방한이 불리하다. 세월호와 교황이 연계된 이런 상황이 말해주는 것은 교황 방한이 한국 사회 전반에 엄청난 무게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기독교 입장으로 돌아가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교황 방한 이후다. 좀 더 넓게 말하면 ‘8월 이후’ 말이다. 교회 다닌다는 게 부끄럽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목사로 산다는 게 지금처럼 참담한 때가 없었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승리를 확신하고 그 열매를 누리는 분위기에 젖어 살아왔으니 현재의 상황을 견디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8월 이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 가톨릭의 교리 가운데 마리아론이나 교황무오설 등을 지적하며 그들이 비성경적이라고 얘기하는 것도 현재의 기독교 상황에서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한 일부에게나 중요할 뿐이다.

신자들 일반에 그런 얘기가 넓게 설득력을 가질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돌아봐야 한다.

교황무오설이나 마리아론이 비성경적인데 그러면 우리는 교권주의나 기복주의 신앙에서 자유로우냐 말이다. 사회 현상적으로든, 선교 전략적으로든, 성경적으로든 지금의 기독교는 가톨릭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할 게 없다.

문제는 우리다. 8월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 문제를 놓고 가슴이 저리게 기도하고 삶을 깎지 않으면 백약처방이 허사다. 마침 9월에는 대부분 교단의 총회가 열린다. 거기에서 무슨 새로운 조짐이 보이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한 세대의 시간 정도는 계속 예레미야서를 묵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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