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더 작은 나

배태현 목사(예동교회)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눅 19:5,6)

유난히 키가 작아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고 자랐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면서 또래와의 키 차이는 더 커져만 갔고, 벌어지는 차이만큼 난 그들에게서 멀어졌다.

어느 날,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시장을 가던 길에 동네에서 같이 자란 몇몇 아이들과 마주쳤다. 눈길을 피하며 지나가려 했지만 아이들은 날 에워싸고 내 머리를 쥐어박으며 난쟁이라고 놀려댔다. 처음엔 저항도 해 봤지만 힘으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었기에 그냥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날 실컷 놀리고는 만족한 얼굴로 돌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날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많이 벌어서 그 돈으로 그들을 내 앞에 머리 숙이도록 만들겠다고 말이다.

그때부터 복수심 외에 돈을 벌고 모으는 일에 방해가 되는 것은 모두 버렸다. 내게 작은 키를 물려준 부모도 버렸고, 심지어 나약하고 패배의식에 사로잡혀 있던 나 자신조차도 버렸다. 오직 내 눈에는 돈만 보였다.

어렵사리 세관에 들어갔고, 남들보다 몇 배 열심히 일했다.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도록 뛰어 다녔다. 비록 내 동족이었지만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단 한 푼도 포기하는 일 없이 세금을 받아 냈다. 아니 기회만 되면 로마에서 정해준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거둬들였다. 거침없이 승진해 여리고 세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런 날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내 뒤에 있는 로마의 권력이 두려웠을 것이다. 점점 돈이 모이고 부자가 됐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큰 집도 샀다. 그 큰 집 안을 값비싼 것들로 가득 채웠다. 난 키가 작은 날 놀린 세상에 그토록 철저하게 복수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복수의 꿈이 이루어져 갈수록 점점 더 작아지는 내 자신을 느끼는 것이었다. 키는 작아도 대신 돈과 권력으로 한껏 부풀린 내 자신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는데 일과를 마치고 내 허세를 바라보는 이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같은 악몽을 꾸는 날이 늘어났다. 상처투성이의 내 자신이 어두움 저편에 숨어 고개를 숙이고 울고 있는 꿈이었다. 손을 뻗어 어깨라도 잡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질 뿐이었다.

잠이 깨면 식은땀으로 배설한 내 외로움이 잠자리에 흥건했다. 그리고 내 영혼이 조금씩 작아져 결국 숨이 턱 막힐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곤 했다. 이젠 내 키보다 더 작아져 버린 나…. 그런 나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눈물이 뿜어져 나왔다.

울고 또 울다가 문득 최근에 소문으로 들은 한 사람이 생각났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진정 복이 있다고 가르쳤다는, 나 같은 세리와 창기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준다는, 자신을 죄인을 위한 의원으로 소개했다는 그가 오늘 여리고에 온다고 들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