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어린이교회학교 교사와 평신도 지도자

임용희 장로는 1986년 8월 정년퇴임으로 24년 간의 총회본부 사역을 마쳤다. 그가 총회의 일을 시작할 때는 교회가 400여 교회였으나 퇴임할 때는 무려 2천 교회에 육박할 정도로 5배의 대성장을 이룩했다. 그런 배경에는 성결교회 교역자들의 열의와 함께 그의 빈틈없고 면밀한 행정적 뒷받침도 일조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는 교회에서도 정년 은퇴하여 은평교회에서 원로장로 추대를 받았다. 은퇴는 교회의 모든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 당회의 양해를 얻어 그가 자진해서 그만 둘 때까지 교회학교 어린이부 평교사로 수고하게 된다. 그가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교회는 이를 허락했다. 왜 그랬을까?

임용희 장로는 1942년 20세 때, 신의주 근처 다사도교회에 입교하고 세례를 받음과 동시에 주일학교 교사와 부장으로 봉사했다. 이때부터 시작한 그의 주일학교 봉사는 그가 은퇴하던 1993년까지 약 50년 동안 쉬지 않고 시무교회의 유년부 교사와 부장으로 묵묵히 봉사했다. 물론 이중에는 북한에서 38선을 넘어오는 기간과 6.25전쟁으로 부산까지 피난 가서 교회에 출석하기까지의 부득이한 시간은 제외한 것이다.

그는 주일마다 언제나 오전 8시 30분까지 교회에 가서 준비 기도를 한다. 그리고 9시부터 유년부 예배의 설교나 분반공부를 가르쳤고, 또한 주일 오후에는 결석한 학생이나 교사들을 위해 전화하거나 심방하는 등 주일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얼마전까지 우리 교단에서 40년 이상 평생토록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한 분은 부산수정동교회 고 박이경 장로와 고 임용희 장로뿐이었다. 이들이야 말로 가르침을 통해 성결교회를 반석 위에 굳게 세운 페스탈로찌, 훌륭한 스승상의 모습이어서 존경스럽다.

국가에서 40년 이상 교사로 봉직한 이들에게 정년퇴직 시에 국가에서 대통령이 여러 가지의 훈장과 표창장을 준다. 그러나 50년 동안 유년주일학교를 위해 헌신한 임용희 장로는 이 땅에서의 표창이나 훈장보다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더 빛난 아름다운 면류관을 사모하였다.

또한 임용희 장로는 퇴직 전부터 평신도 운동에 관여하다가 정년퇴임 후에 본격적으로 평신도 활동에 뛰어들어 탁월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였다. 그는 1954년 부산 용주동장로교회에서 장로장립을 받고 1958년 수정동성결교회에서 장로취임을 함으로 성결교회 평신도 지도자의 반열에 서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평신도 지도자로의 사역은 1962년 총회본부의 서기로 부임하며 서서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1964년 김원철 장로를 도와 성결교회에 남전도회를 창립하기 까지 행정적 뒷받침을 했으며, 1966년 서울지방 장로회 총무에 이어 1969년 전국장로회 총무로 발탁되어, 1979년 까지 10여년동안 장로회 지방회의 조직을 발전시켜 전국장로회를 반석 위에 올려놓아 활성화 되는데 기여했다.

1973년에 서울지방장로회장으로 조직을 강화했고, 총회본부 정년퇴임 후인 1987년에는 교단 총회 부총회장으로 추대되어, 교단 창립 80주년의 행사를 성대하게 치루는데 기여했다. 또한 이듬해에 전국장로회장과 동시에 초교파적인 한국장로협의회 부회장으로 피선되어 교단을 대표한 한국교회 평신도지도자로서 기독교 연합사업과 일치에도 기여했으며 교회연합운동 활성화에 공헌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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