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비 콕스(Harvey Cox)는 오래 전에 ‘결백한 공범자’란 말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에 의하면,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행위는 나치만의 범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행위가 옳지 않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침묵하고 묵인함으로써 그 범죄 행위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인간의 반역’이라고 학살 행위를 규정한 그는 당신은 결백한 공범자가 아니냐고 물었었다.

▨… 목사가 장로를 고발하고 장로가 목사를 고발하는 사태가 빚어지더니 목사가 목사를 고발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남의 교단 일이거니 했더니 우리 교단 안에서도 툭하면 벌어져 연례행사처럼 겪어야 하는 일이 되고 있다. 잘못된 일에 대하여 ‘아니오’하지 아니하다가 결백한 공범자가 될까 염려되어 팔을 걷어붙이는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우리 교단이 언제부터 이렇게 정의에 목말라했는지 조금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 어느 이름 없는 노(老)목사가 ‘잃어버린 어린 양’에 대해 설교하며 예수님의 이 잃어버린 어린 양에 나의 마음을 대입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질문하였다. 우리 안에는 나의 부와 명예와 권력과 성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나의 마음이 산골짝 어느 어두운 절벽 밑에 나뒹굴고 있다면 마음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겠느냐는 요지였다.

▨… 맹자의 가르침을 굳이 다시 인용해야할까. “인(仁)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義)는 사람이 걸어갈 길이다. 그 길을 버리고 따라 가지 아니하고 그 마음을 잃고도 구할 줄 모르니, 슬프도다. 사람이 닭이나 개를 잃으면 그것을 찾으려 하면서도 마음을 잃고는 찾으려 하지를 않는구나.” 마음을 잃으니 결백한 공범자인 나는 보이지 않고 인과 의를 버린 나도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닐까.

▨… 성결한다는 것과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그것은 모순 관계일까. 동반 관계일까. 성결을 주장하면서도 인과 의에 대해 눈을 감는 것을 보면 모순 관계인 것도 같고 성결을 남보다 더 고창하면서도 결백한 공범자 의식에 대해선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음을 보면 동반자 관계인가 헷갈려 버린다. 사도 바울은 당당히 선언했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노라(고전 2:16)” 하릴없는 탓일까, 부끄럽기만 하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