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싸움 끝에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는 귀향길에 올랐다. 세이렌의 노래가 들리는 바다에 가까이 이르자 오디세우스는 호기심에 온몸이 떨렸다. 모든 부하들의 귀를 밀랍으로 막았다. 그리고 자신의 몸은 돛대에 묶었다. 마침내 배는 세이렌의 바다에 들어섰다. 들려오는 노래는 너무도 아름답고 유혹적이어서 심장이 터질 지경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게 만드는 노래였다.(호메로스·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 권력의 좌에는 그 권력자만 들을 수 있는 세이렌의 노래가 끊임없이 연주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들은 한결같이 소통부재였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교적 대통령의 권위에 관해서는 소탈했던 노무현 대통령까지도 평검사들과의 대화의 자리에서 ‘막가자는 것’이냐고 핏발을 세웠었다. 세이렌의 노래만 들으려 했고 들렸던 것이다.

▨… 교단 총회장의 자리도 세이렌의 노래만 들리는 자리일까. 돛대 높은 곳에 마련한 자리여서 권위가 더욱 빛날 수 밖에 없는 탓일까. 역대 총회장 가운데 어떤 분들은 소통에 대해서 전혀 관심도 필요성도 느끼지 않는 모습이었다. 성령께서 허락하셔서 얻은 자리라는 믿음 때문에서였겠지만, 혹여 당신의 판단과 결정에는 흠결이 없다는 세이렌의 노래에 흠뻑 젖어 있었던 결과는 아니었는지 이제서라도 묻고 싶다.

▨… 조선왕조 중종 때의 조광조는 왕의 시책과 결정을 바로잡기 위하여 왕에게 간할 때 허락하는 답을 듣기 전에는 그만두지 아니하였다. 왕이 세이렌의 노래에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조광조는 “내가 곧은 도리로 섬기다가 다행히 살면 살고 혹 불행하여 죽으면 죽으리라”고 하였었다. 그가 기묘사화에서 목숨을 잃은 것은 어쩌면 그다운 삶의 귀결이었다.

▨… 평론가들은,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었던 힘을 스스로 제 몸을 묶었던 밧줄에서 찾으며, 그것을 오디세우스의 자기절제(소프로시네·sophrosyne)라고 해석한다. 그리스 철학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덕목 가운데 하나로 소프로시네를 꼽았다. 총회장을 비롯한 교단의 지도자들은 모두 세이렌의 노래를 물리칠 수 있는 소프로시네를 갖추고 있다고 믿고 싶다. 성결의 은혜를 듬뿍 받으신 분들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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