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서울중앙지방∙성락교회)
이른바 ‘문창극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사회 정치적으로도 상당 부분 그렇고 기독교 교계에서 더 그렇다. 이번의 논란과 연관하여 현실적으로 염려되는 게 두 가지다. (1)사상의 좌표에서 중간 영역에 서 있는 기독교 지도자들의 분열과 (2)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의 증폭이다. 이 두 가지에 비하면 문 후보자의 강연 내용은 사실 두 번째 문제일 수 있다.

기독교 지도자들의 분열 문제를 보자. 한국 기독교는 그동안 연합과 일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연합기관의 내부적인 부패와 헤게모니를 둘러싼 분열 현상을 겪으면서 하나 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강연 내용이 기독교 안의 사상적 집단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사상적 좌표에서 기독교에도 극우와 극좌가 존재한다. 이 사람들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대개 정치적인 상황에 깊이 연관돼 있다.

문 후보의 강연 내용을 두고 기독교적인 역사관이며 민족사관이라고 주장하는 쪽이나 비기독교적인 식민사관이라고 주장하는 쪽이 있다. 양쪽의 성명전이나 언론플레이는 대부분 여론 형성과 주도를 겨냥한 정치적인 행동이었을 것이다.

우려되는 것은 기독교 리더들 가운데 중간 좌표에 서 있는 사람들이 갈리는 것이다. 강연과 관련하여 세심하고 진지하게 논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를 표명하게 만드는 상황이 분열을 부채질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연중에 ‘우리를 편들지 않으면 반대쪽’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문제는 커진다. 어떤 일에서든 중간 지대를 놔두지 않으면 매카시즘이 판친다.

우려스러운 것 두 번째는 이 사안과 연관하여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커졌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 사회의 흐름에서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사회적으로 퍼진 데는 1999년의 옷로비사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걸로 보인다.

우리가 현실적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적 인식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이다. 긍정이든 부정이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당연히 언론이다. 언론을 통한 사회적 인식 형성에서는 어떤 때는 팩트 자체는 별 상관이 없다. 일단 부정이나 긍정 쪽으로 기류가 어느 선 이상으로 형성되면 그 대중적인 인식 또는 거기서 형성된 고정관념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언론이 가장 강력하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조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전달되느냐’ 그리고 ‘얼마나 짧은 기간에 동시에 전달되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서 청문회는 여론 형성에서 결정타다.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형성과 연관하여 ‘단순하게 이런 구조에만 초점을 맞추고 본다면’, 1999년 옷로비사건이 청문회를 통하여 안방까지, 전 국민이 동시에 시청할 수 있게 생중계됐다는 게 핵심이다. 정치적으로 강력한 폭발성을 가진 사안에 기독교인들이 부정적으로 연루되었는데 그게 생중계되었다!

문창극 사건은 옷로비사건과는 기본적인 구성 사항들이 다르다. 그러나 이번 사안도 위에서 말한바 사회적 인식에 연관된 ‘구조적 측면만 본다면’ 중요 조건이 다 갖춰졌다. 사회 정치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고 편이 갈렸다. 언론에 중계되었다. 교계가 엮였다.

전문 여론조사에서 60퍼센트 중반부터 70퍼센트까지가 문 후보가 총리가 되는 데 부정적이었다. 적합 의견은 9퍼센트에 불과했다. 문 후보자와 연관된 사안이 언론에 중계될수록 그리고 청문회가 열렸다면 더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 전체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이 더 컸을 것이다.

문창극 개인이 기독교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강연이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종합적으로 바람직하게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단순하게 표를 던지는 식이 아니라 각자의 의견을 얘기해야 한다. 선교는 어떤 점에서 기독교의 복음과 가치관에 대한 변호요 변증이다.

한국교회가 복음을 변증한다면 정치적인 싸움에 휘말린 마당에서, 그것도 주제와 연관해서 마치 서자 취급 정도 받는 상황에서 할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전략을 갖고 깊이 기도하면서 기독교적 가치관이 중심의제가 되는 마당을 펴야 한다. 거기에서 오늘날의 정신세계를 설득하거나 압도할 수 있는 기독교의 지성과 양식을 발휘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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