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시작한 신앙생활과 결혼
그의 삶은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강의록을 공부하는, 그야말로 주경야독(晝耕夜讀)이었다. 몇 년 만에 중학 강의록을 마친 그는 내친김에 와세다대학 강의록에 등록하여 공부하면서 나중에는 꼭 와세다대학에 들어가 공부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밤이면 책을 읽었다.
그는 우연히 ‘우주 제일의 책’이란 제목의 책을 사서 읽다가 그만 감동을 받았다. 그 책은 당시 일본 구세군 대장 산실군평(山室君平)이 쓴 책인데,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큰 경륜이 성경 속에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전도용 책이었다.
그때까지 그는 무신론자였지만 이 책을 읽고부터는 문득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서 가까운 교회를 찾아갔다. 그 교회가 애지현에 있는 풍교성결교회(담임 정희섭 전도사)였다. 그의 나이 26세이던 1935년 11월 15일이었다. 그 교회는 한인교회였는데, 그때부터 공 예배는 물론이고 새벽기도회도 빠짐없이 나가 기도하고 설교를 들었다.
그렇게 열심히 나가니까 그가 신앙이 있어 보였던지 3개월쯤 되던 어느 주일에 전도사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공중기도를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가 일어나 “하나님 아버지”하고 첫 음을 떼긴 했지만 갑자기 무슨 말을 어떻게 할지 몰라 쩔쩔 매다가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큰 창피를 당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을 얻으려면 그런 창피도 이겨내야 했다. 그렇지만 또 기도를 시킬까 봐 일부러 늦장을 부리다 설교하기 직전에야 교회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가 이런 안타까운 교회생활을 하다가 1년 만에 학습을 받고 교회에서 나올 때였다. 갑자기 파란 하늘이 노랗게 변하더니 가슴이 답답하고 뜨거워져 집으로 막 달려가면서 갑자기 성경이 읽고 싶어졌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가지고 있던 성경을 펼치니 창세기 1장이 나왔다. 1장 1절을 큰소리로 읽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그 순간 그의 머리가 맑아지며, 모든 우주와 만물의 질서가 잡히고, 사람과 세계를 모두 하나님이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신앙생활이 재미가 있고, 기도도 막히지 않고 뜨겁게 할 수 있게 되었다. 참 놀라운 은혜였다.
그후 교회에서 서울에 계신 이명직 목사님을 초청하여 부흥사경회를 열었다. 그는 이명직 목사님에게 사중복음(중생, 성결, 신유, 재림)을 자세하게 배우며 큰 은혜를 받았다. 그의 나이 28세 때 같은 교회에 다니는 조선에서 온 처녀(류순이)를 담임 정희섭 전도사가 그에게 중매했다. 그런데 딱 한 번 만나보고 결혼을 할 정도로, 그는 그 처녀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해 두신 자기의 배필임을 확신했다. 그녀는 고향이 그와 같은 경상북도 상주였다.
그 처녀는 당시 16세 때 그녀의 부모가 강제 결혼을 시키려고 하자 싫다고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계속 우니까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여비를 주어 친척이 사는 일본 애지현으로 도망 온 상황이었다. 그러다 한인교회인 풍교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그보다 1년 전에 그녀가 이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여 세례도 받은 착실한 신자였고 하나님이 예비한 착한 규수였다.
그래서 그의 나이 28세, 그녀가 24세 되던 1937년 7월에 정희섭 전도사의 주례로 그는 양복을 입고 신부는 면사포를 쓴 서양식 결혼식을 했다. 그후 부부는 교회의 집사로, 주일학교 교사로 열심히 봉사하며 은혜 충만한 삶을 살았다. 그는 이 결혼을 하나님의 섭리임을 알고 감사했다. 그가 아내를 만나지 못했으면 그의 인생도 목회생활도 실패했을 정도로 그의 아내는 교역자 사모로서 훌륭했다고 필자에게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