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 왔는데 하나는 사랑에 대한 열망이고, 둘은 지식에 대한 탐구이며, 셋은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연민이다.” 이 글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무신론자로서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러셀(Bertrand Russell)의 좌우명으로 그를 존경했던 이 시대의 행동하는 지식인 촘스키(Avram Noam Chom skey)가 그의 연구실에 걸어두어 더 유명해졌다.

▨… 촘스키는 1928년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러시아계 유대인 이민 2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히브리어 학자로 우크라이나 태생, 어머니는 유대인의 전통을 엄격하게 지키려고 노력했으며 벨라루스 출신이었다. 젊었을 때는 키부츠 정착을 고민하기도 했었으나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촘스키는 유대인들의 편협한 시오니즘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억압정책을 끊임없이 비판했다.

▨… 무엇보다 촘스키는 미국인이면서도 미국의 정책과 행태를 가차없이 까발리고 고발했다. 그는 소련 체제를 비판한 사하로프를 예로 들면서 “나는 미국 사람이기 때문에 미국의 잔학 행위를 얘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신념 때문에 그는 체포당하기도 했고 닉슨 정부 시절에는 ‘국가의 적’ 명단에 그 이름이 올랐으며, 1970년대에는 미국 CIA의 행적 감시 대상이기도 했었다.

▨… 27세에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세계의 여러 나라에서 그만큼 많은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이름을 얻었지만 그는 모든 면에서 ‘민중 지식인’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한 번도 권력에 머리 숙이지 않았고 권력의 자리를 탐내지도 않았다. 그는 줄기차게 배타적 애국주의로 치닫는 미국의 주류 언론과 지식인을 비판하며 언론의 선전 공세 뒤에 감춰진 진실을 밝히려 싸웠다.

▨… 우리나라에도 촘스키 같은 지식인이 있어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발전해왔을 것이다. 우리 교단에도 촘스키 같은 지식인이 있다면 교단의 정치가, 행정이, 두려워할 것은 두려워하고 조심할 것은 조심하는 풍토가 되었을 것이다. 교단에서 출세할(?) 것은 포기하고, 자기 이익도 탐하지 않고 진실만을 말할 민중 지식인적인 목사는 어디 없을까? 있을 것이다. 있다고 믿고 싶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