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밀경찰은 두 유대인 남자와 한 소년을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앞에서 교수대에 매달았다. 두 남자는 곧 죽었지만 소년이 죽기까지는 반시간이나 걸렸다. 이 때 내 뒤에 서있던 한 사람이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 그가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물었다. … 나는 마음 속으로 말하였다. 그가 어디에 있는가? 그는 여기에 있다. 저기 교수대에 매달려 있다”(엘리 비젤 · 밤(night)

▨… 비젤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다. 그가 남긴 또 하나의 우화. 어느 사람이 하나님에게 물었다. 사람 노릇과 하나님 노릇 중에 어느 편이 더 힘들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 노릇이 훨씬 더 힘들지. 어떻게 그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 노릇은 해보신 일이 없고 저는 하나님 되어 본 적이 없는데요. 서로의 처지를 알아보기 위해서 딱 일초만 자리를 바꿔 보시면 안될까요? 워낙 졸라대서 하나님은 마지못해 동의했다. 결과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은 인간은 자리를 다시는 내주려 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우주 밖으로 내쫓겨야만 했다.

▨… 교단 대표로 다수표는 받았지만 선출 과정에서의 자격 유무 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어느 분이 자신있게 선언했다. “내가 당선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인 줄로 믿습니다.” 남의 교단 일이니 당선여부야 그 교단 사람들이 가릴 일이지만 ‘하나님의 섭리’가 제비뽑기에 인용되더니 교단 대표 선출에도 동원되는 양상은 아무래도 비젤의 우화를 상기시켜 입맛이 영 떨떠름하지 않을 수 없다.

▨… 하나님의 섭리가 귀에 걸어도 좋고 코에 걸어도 좋은 그런 말일까?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에 가져다 준 것처럼(희랍신화) 예수께서도 성령이라는 ‘마법의 불’을 인간에게 가져다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영지주의이지 기독교는 아니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선 아무 것이나 성령의 역사가 되고 하나님의 섭리가 되는 일은 없다.

▨…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는 데서 찾아야 한다. 십자가가 패배라면 패배하는 데에 있다. 또 낮아짐이라면 낮아지는 데에 있다.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에게 자신을 비우도록 명령할 뿐, 이기적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